나를 선택한 고양이

당신은 소울메이트를 찾아 헤매고 있나요?

by 구름조각

벌써 11년인가. 우리 고양이가 나를 집사로 간택한 날로부터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날의 운명 같은 만남 이후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나의 고양이이다.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 뿔뿔이 흩어지던 가족들을 연결해준 고마운 존재. 그리고 언제나 외롭고 공허했던 내 마음을 위로해준 유일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건 진짜 사랑이다. 전 남자 친구와 알량한 연애놀이에서 느끼는 풋내 나는 감정도 아니고, 혈육이란 이름으로 선택권 없이 아등바등 부대끼며 살아가는 관계도 아니다. 고양이는 스스로 걸어와 나를 선택했고 11년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나를 참 소중하게 여겨주고 사랑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내가 얼마나 나의 고양이로부터 사랑받고 있는지 자랑해 볼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작은 생명체들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큰 따스함을 주는지. 가끔 내가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으면, 나의 고양이는 내 발치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난 고양이가 그렇게 애틋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지는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동생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지루해하지도 않고 나를 오래오래 바라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반가운 듯 "야옹" 예쁘게 울어 준다. 나는 찰나의 눈 마주침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아이가 날 오래도록 기다려 준 거였다. 내가 자기를 바라볼 때까지 보채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고.


설거지를 하다 그릇이 와장창 깨지기라도 하면, 가끔 내가 멍하니 걷다 문지방에 발가락이라도 찧어 소리를 지르면 나의 고양이는 방에서 우다다 달려 나온다. 그러고는 할머니가 손주에게 잔소리라도 하는 듯 "애오옹~ 이야오옹" 길게 울어준다. 그러면서 내 발치에 머리를 비비적대는 모양새가 마치 조심하라고 나무라는 것 같아서 웃음이 터질 수밖에. 우리 집에서 나의 비명소리에 제일 먼저 반응하는 건 이 삼색 고양이이다. 그 아이는 한참을 울며 잔소리하다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서야 다시 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곤 한다. 난 그게 마치 우리 고양이가 나를 자신의 아기라도 되는 양 취급하는 것 같단 말이지.


추가로 우리 고양이가 이 집사를 아기 취급해줄 때는 해가 지고 모두가 잠드는 밤이 올 때이다. 이 아이는 내가 잘 때까지 내 옆을 지켜준다. 가끔 밤늦게 티브이라도 보면 무릎에 앉아 잠투정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내가 자러 침대에 누울 때까지 기다린다. 친구와 통화가 길어지기라도 하면 옆에서 또 그 잔소리하는 듯한 애옹 메들리를 들려주고, 유튜브 시청이 길어지면 머리로 스마트폰을 든 손을 쿡쿡 밀어대며 어서 자라고 보채는 거다. 그 애교에 못 이기고 침대에 반듯이 누우면 고양이는 내 옆구리, 다리 사이, 이불 밑에 들어와 동그마니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다. 난 그 애의 고로롱 대는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에 스르르 잠이 든다. 고양이를 만난 후로 한 번도 불면증을 앓아 본 적이 없다. 혹시나 사람이랑 자는 게 좋아서 그런가 싶어 내가 늦게 잘 때는 동생 방이나 엄마 옆에 고양이를 두고 온 적도 있다. 그러면 그 애는 집요하게 방문을 긁고 문을 열어달라 보채서 기어이 내 옆으로 온다. 그러고는 또 내가 잘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주는 거다.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하지만, 난 반대로 생각한다. 고양이에게 사료와 안전한 집을 베푸는 게 아니고 되려 그 애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달이 드는 사료값과 모래값이야 저렴한 수업료 같은 것이다. 그 누가 나를 이렇게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 봐주고, 내가 아플 때마다 달려 나오며, 나와 함께 잠들 때까지 기다려 주겠어. 이런 사랑은 오직 어린날 엄마의 품에서만 받아 봤다. 내 기억 속에서 목욕하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내가 뜨거운 물에 데어 화상이라도 입으면 밤새 거즈를 갈아주며 흉이 지지 않게 보살펴 줬다. 속상한 마음에 혼자 훌쩍이는 소리를 들키기라도 하면 엄마는 오래도록 내 등을 쓸어주며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 줬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31살이 된 지금까지도 나의 고양이에게 받고 있다. 30살 이 넘은 여자를 누가 그리 사랑해주겠나. 남자에게도 그런 따뜻한 애정은 받아 본 적이 없다. 남자들과의 연애에서는 이런 따뜻한 애정보다는 뭐랄까... 열정과 욕망이 뒤섞인 뜨겁고 끈적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연애가 참 아프고 괴로운 기억이었고, 이별 후에는 묘한 해방감까지 들곤 했었다. 그러니 어느 남자가 와도 내가 고양이와 나누는 이 친밀감과 따뜻한 애정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웅크리고 자고 있는 모습, 예민한 아이라 몰래 사진을 찍으려 해도 저렇게 실눈을 뜨고야 만다.


가끔 우리 고양이가 날 떠나면, 그 뒤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에게 단연 1순위의 소울메이트는 다친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절뚝거리면서 나에게 걸어와 준 이 고양이 한 마리이다. 가끔 내가 고양이를 끼고도는 걸 보며 아버지는 한심하게 혀를 차지만 어쩌겠어.(30이 넘도록 시집도 안 가는 딸래미 레퍼토리 뻔하지 뭐) 난 아버지 당신에게도 이런 사랑은 받아 본 적 없다. 그리고 내 지난 남자들에게서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배신자들이고, 의리 없고, 실망스러운 인격들 뿐인데. 이렇게 오래도록 날 아껴주는 사람은 우리 엄마랑 고양이뿐이라고. 그러니까 너네 집에는 고양이 없지? 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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