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May 03. 2021

한 여름 오후 두 시의 느티나무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길이 있다.

    엄마가 나를 낳고 사주팔자를 봤더니 역술가가 이런 말을 하더란다.

얘는 한여름 오후 두 시의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니, 이 아이는 큰 나무로 자라 가장 더운 날 가장 더운 시간에 깊은 그늘을 내려주는 느티나무처럼, 지친 사람들이 곁으로 와서 쉬고 갈 거라는 말이었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묘사였지만 한 편으로는 나는 어디도 기댈 곳 없이 홀로 우뚝 서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나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느티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옛날 시골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를 심어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평상에 마을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정자나무로 심기도 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옹기종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가끔은 시원한 수박이나 막걸리를 한잔 마시기도 하는... 이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자면, 희생이나 헌신, 무언가를 지켜내는 수호자 같은 성격일까. 곧게 자라는 만큼 고집도 세고, 남들한테는 기대지 않으려는 성격. 내가 이런 성격을 가졌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 무리 속에 섞이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도.

큰 나무 아래 정자, 도시에선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내 그런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났던 게 28살에 독일에서 우울증을 안고 돌아왔을 때였다. 부모님은 이혼 위기고 가족들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고 모두 경제적으로 힘들어졌을 때, 나는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면, 친구들은 부모님은 두고 그냥 네 인생 살라고 말해줬다.


 그 말도 맞지. 내가 18살도 아니고 28살인데, 부모님이 싸워서 이혼을 하더라도 큰 대수가 아니잖나. 어떻게든 나도 자립을 해서 살았어야 하는 나이고.


    그런데 다 알면서도 못 놓았다. 한 번은 엄마랑 같이 가게를 운영하다 크게 싸우고 혼자 뛰쳐나온 적도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엄마 전화를 받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며 묻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해 나에게 많이 의지했었다.


    아버지와는 소주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몹시 괴로워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며 우셨다. 엄마가 자기에게 말하지 않고 빚을 졌다는 게 큰 배신감이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에 배신당한 남자의 슬픔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난 아직 관계를 회복할 희망이 있다고 확신했다. 배신이 슬픔으로 느껴지는 건 아직 사랑하는 마음이 남았다는 의미이다.


    내 가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버텼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왔다. 엄마의 생각을 정리해서 예쁜 말로 아빠에게 전하고, 아빠의 마음을 정리해서 다시 엄마에게 전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 모두에게 오래 묵혀온 서운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사소한 오해와 섭섭함이 자라고 자라서 큰 갈등이 되어 버렸다. 알면 알수록 두 사람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우연히 친한 친구가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그 친구의 부모님도 이혼 위기고 동생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다. 그 친구도 나도 집의 장녀였기 때문에 비슷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하듯이 부모님 사이에서 말을 잘 전하고 서로 오해를 풀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네가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그 친구가 딱 잘라 말하길, 자기는 부모님이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바라는 건 소송이 아니라 합의로 깨끗하게 해결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그렇게 정답이 있을 거면 왜 나한테 조언을 구하냐'는 식으로 날카롭게 받아쳤고, 우리 둘 다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성을 높일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친구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에게 도움을 얻고 싶었을 텐데, 내가 왜 그렇게 날 선 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가 당연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가족'을 그 친구는 쉽게 포기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친구와 다투고 1년쯤 지났을 때 버스 안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그날은 비가 왔고 버스 안은 퇴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덥고 습했다. 친구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빗줄기가 흐르는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니 서로 반가워서 두 세 정거장이 지날 동안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점에 난 새 일자리를 찾았고 우리 가족은 사이가 많이 괜찮아져서 함께 외식도 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원만하게 합의 이혼을 하셨고 지금은 따로 사시면서 각자 삶을 살고 계시고, 그 친구도 집을 나와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고 했다.


    짧은 만남은 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같은 갈림길에 서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갔다. 나는 가족을 지키는 선택을 했고, 그 친구는 가족을 떠나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나는 오른쪽, 그 친구는 왼쪽. 단지 그 정도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흩어져도 삶은 끝나지 않는데 내가 부모님을 놓지 못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애쓰는 바람에, 헤어졌어야 할 부모님이 헤어지지 않은 건 아닐까?
어쩌면 가만히 두어도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는데, 내가 너무 조바심을 낸 건 아닐까?
부모님이 아니라 나의 삶을 우선하고 선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난 '지키는 것'을 택했을 것 같다. 사람의 성격이란 게 그렇다. 어떤 사람은 갈림길에서 늘 오른쪽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늘 빨간약을 선택하며, 어떤 사람은 늘 떠나는 것보다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 사주팔자 같은 것은 그런 인간의 무의식적인 선택의 경향성을 설명해 주는 게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선택을 계속하는데 그 길이 이어져 하나의 도착지에 다다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이 자신을 여기로 이끌어 왔다고 착각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난 더 이상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난 이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동생이 나와 술 한잔을 하면서 지금 이렇게 우리가 다시 한집에서 살 수 있는 건 누나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래, 그거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윤여정이 보여준 여자의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