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검은 드레스와 백발로 위트 있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윤여정이 이 시대의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특히나 열심히 일하라고 잔소리 해준 아들들에게 고맙다며 "Mommy works so hard."라는 한마디가 인상 깊었다. 지금은 웃을 수 있는, 그러나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치열한 워킹맘의 삶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로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 나는 항상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6살이던 내가 「첫아이를 가졌어요」나 「임신, 출산, 육아」책을 읽고 있으면 어른들이 신기해하곤 했다. "넌 그게 재밌니?" 나는 그게 재밌었다.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다.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내가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이. 아이를 품을 수 있는 몸이라는 건 참 소중하다.
어른이 되고서는 어머니가 되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도 만만찮은데,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것도 참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는 건 절대로 거절하고 싶다. 나의 큰엄마와 엄마가 할머니 앞에서 얼마나 을이 되는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남편이야 내가 사랑으로 선택했고, 피붙이인 자식을 키우는 어려움이야 기꺼이 감내하겠으나 시어머니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에서 멀어졌는데, 그에 따라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도 함께 멀어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결혼 다음 임신 출산이라는 공식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없는 아이의 삶이나 경제적 문제를 생각하면 아이를 낳는 일이 아득히 멀기만 하다.
어머니가 되는 건 자신 있는데, 누군가의 아내로 가정을 꾸린다는 게 참 어려워 보인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항상 어려워한다. 매번 기대를 걸고 매번 실망한다. 내가 보기엔 아빠도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엄마의 서운한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세월, 말로 다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있었겠지. 반대로 아빠 입장에서도 아내가 가정을 지켜주면 좋겠는데 자꾸 집 밖으로 나도는 것 같아 못내 불만인 모양이다.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모두 싸울만한 일이다. 두 사람은 지치지 않고 싸워 대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난 저것도 사랑이려니 눈을 감아버린다. 둘 다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잘못되었다 싸우는데, 하나 하나 잘잘못을 따져 대봤자 양쪽 모두에게 그럴듯한 사정이 있다. 내가 보기엔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은 사람들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남한테 폐 안 끼치고, 되도록이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러나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도 어려운 게 결혼생활이다.
되도록이면 결혼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도 낳지 않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인연은 만들지 말아야지.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에서 부처가 해탈하기 전까지 끝내 놓지 못한 연이 아들과의 인연이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이 부모 자식의 연이다. 소설을 읽다 덜컥 두려워졌다. 이다지도 강한 인연은 나를 날아가지 못하게 땅으로 붙잡아 놓는다. 훨훨 떠나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게 한다.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고 살아내게 만든다. 부모님과의 연도 그렇다. 질긴 인연들은 얼기설기 얽혀 그물이 되어 추락하는 나를 받아 내준다. 내 목숨을 포기하지 못하게 잡아주고, 홀연히 떠나지 못하게 묶어둔다. 내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지 않은 건 순전히 우리 엄마 때문이다. 엄마를 버리고 떠나기엔 엄마는 너무 여리고, 날 너무 사랑하고,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 손을 놓을 수 없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그건 어머니가 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버거운 삶의 무게를 졌기 때문이다. 나의 할머니는 남편 없이 야채 장사로 세 아이들을 키워내고 허리가 꼬부라져 버렸다. 삶의 무게란 그렇게 사람의 단단한 척추뼈도 휘어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큰아들은 희귀병으로 10년을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 큰엄마는 할머니의 큰아들이자 병상에 누운 남편을 보살폈다. 시어머니와 아픈 남편을 돌보며 두 아들을 키운 큰 엄마의 몸엔 위암, 자궁 적출, 심장 수술 흔적이 남았다. 난 그들의 삶을 보며 어머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통으로 사람이 강해진다는 건 그나마 사지 멀쩡하게 살아 남아야 할 수 있는 소리지 않나. 고통에 짓눌려 살아가는 삶이 버겁기만 하다. 난 그런 짐을 기꺼이 지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늪처럼 잡아끄는 카르마를 느끼기 때문이다. 무섭도록 움켜지는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여정의 웃는 얼굴을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지기도 한다. 견뎌온 삶의 무게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여유. 아카데미 상을 받기 전에도 그녀는 이미 멋있는 여자였고, 강한 어머니였다. 어머니로 살면서도 여자로서의 매력과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끝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다. 그녀에게도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과 이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모욕을 견뎌온 시간이 있을 텐데 그것들은 이미 티끌만큼도 남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의 무게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인생을 살다보면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강줄기를 이루고 끝내 정해진 목적지로, 거대한 바다로 이르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윤여정이 예술병 걸린 전남편 따라 미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위트있는 영어 농담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그녀는 볼수 없었을 거다. 두 아들을 데리고 이혼해 생계가 각박하지 않았다면, 닥치는 대로 연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연기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눈앞을 가린 가시덤불을 정신없이 해쳐 나가다 돌아보면 그곳이 길이었노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세상에 밀쳐지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온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우뚝 서게 된 윤여정을 보는 나와 엄마도 희망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