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Aug 18. 2022

인생이 지금보다는 흥미진진할 줄 알았어.

Dear T.S

    인생이 지금보다는 더 흥미진진할 줄 알았어. 어렸을 때는 말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거대하게 펼쳐진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상상했거든. 끝도 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하늘과 바다의 색이 어우러져 위와 아래를 구분할 수 없는 풍경처럼, 무한히 자유로울 거라고 기대했어.


    "자유" 아! 나는 그 단어를 듣기만 해도 너무나 설레고 가슴이 일렁거려. 나는 평생 그것을 추구해왔어. 자유와 해방. 무엇에 메여있는지도 모른 채로. 나는 늘 자유로워지길 바랐지.


    그런데 지금은 말이야. 고여있는 느낌이야. 깊은 웅덩이 속에 소용돌이치는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아. 발버둥 치는 내 팔다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져.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데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가볍게 위로 떠오르고 싶은데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원래 인간은 하늘에서 추락해 땅속으로 파묻히는 존재인 걸까?


    머릿속에 생각들은 기포처럼 떠오르고 터져버리지.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도 전에 많은 생각들이 사라지고 그 안에서 쉽게 길을 잃어. 이 생각들에 어떠한 쓸모를 부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걸지도 몰라. 문자로 남겨두면 무언가 하나의 발자국을 남긴 듯하여,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생겨. 이것은 형체 없는 것에 형체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은 글이 되어 마침내 종이 위에 활자로 남겨질 때, 형체 없는 생각이 어떠한 쓸모를 얻게 돼. 어차피 늘 몽롱한 눈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테니, 이런 생각들에 쓸모를 부여하는 일이 나의 최선이겠지.   


    검은 글자가 된 생각들을 다시 읽어보고 만년필 잉크가 스며든 종이를 한번 쓸어봐. 건조한 손끝이 종이 위를 쓸어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생생한 감각으로 물질화된 생각들을 만나. 나에게서 나온 것들이 참 낯설다고 느끼면서, 이것이 내 안에서 태어난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너에게만 들려줄게. 내가 하는 이상한 생각들을... 가끔 난 프리즘이 된 것 같아. 색이 없는 빛에 프리즘을 대면 빛이 수없이 많은 색으로 분열되잖아. 나는 세상이라는 혼란하고 뒤섞여 있는 무언가를 무수한 갈래로 나누는 프리즘인 거지. 결코 전체일 수는 없지만 일부로 존재하는 거야.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프리즘과 같아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이 푸르다고 말하고,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은 세상이 붉다고 말하겠지.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이지만 근본적으로 일부는 전체가 될 수 없지.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불과하여, 가끔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용하고 무의미한 일인  같아. 그럼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글을 써내는 동안 자유로움을 느껴.  행위 자체는 누군가 나에게 요구하거나 시킨 일이 아니니까. 자발적이고 자율적행위야. 모든 것을  의지대로 선택할  있음이 주는 자유를 느끼는 거야. 글의 주제, 길이, 전개 방식, 장르, 시작과 마무리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에서 지극한 만족감을 느껴.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면서도 비슷하게 느꼈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연습장 수십 권을 채워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렸지. 무언가에 몰두하고 몰입하는 것이 주는 자유로움을 알아. 주변의 소리와 멀어지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단절되어 오롯이 나와 만나는 기분이야.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었지.


    창작은 불이야. 타오르는 불꽃이 물질을 변성시키는 것처럼, 나는 세상을 경험하면서 삼키는 것들을 내 안의 불꽃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 고통과 슬픔을 삼키고 불로 달구고 여러 번 두드려서 잘 제련된 창작물로 만들어. 날카롭게 벼려지고 고상하게 다듬어진 조화로운 대상. 그것이 글이나 그림이 되곤 하지.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잃어본 경험이 있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대에 진학하면 행복할 줄로 알았어. 그렇지만 입시 미술을 공부하는 건 너무 고통스러웠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대면서 내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은 전혀 즐겁지 않았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는 교수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어. 내가 만족하는 그림이 아니라 선생님이 만족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지. 그 과정에서 내가 남을 만족시키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 돈을 번다는 일은 궁극적으로 남을 만족시키는 일이니, 내가 그것을 제대로 못할 거라는 것도 깨달았지. 디자이너가 되거나 화가가 되었다면 틀림없이 고통스러웠을 거야. 나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거나 대중적으로 팔릴만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을 거니까. 그래서 미대 입시는 그만두기로 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


    자유로울 수 있는 수단 하나를 잃어버렸어. 이제는 하얀 종이를 보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해. 예전에는 자꾸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들이 어디론가 도망가버린 것 같아. 정해진 틀대로 그림을 그렸던 시간들이 내 팔다리를 잘라놓은 거야. 이제 나는 붓도 펜도 들지 못해.  


    글을 쓰는 것이 나의 그림처럼 되어 버릴까 봐 두려워. 많이 읽히는 글, 돈이 되는 글을 쓰다가 내가 원하는 글을 글을 잃게 될 것 같아. 책을 내고 돈을 벌고 명성을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몰입하고 몰두하고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상태. 찾고 있는 것은 그 순간이야. 그럼에도 자꾸 책을 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꾸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아서야. 이 사회는 오랫동안 돈이 되는 것이 쓸모 있는 거라고 말해왔으니까.


    T.S. 나는 요즘 고여있고 가라앉고 있어. 아마도 더 깊이 침잠해야 할 것 같아. 숨을 오래 참는 법을 배우고 있어.


With Love

2022년 8월 18일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보는 내 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