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L의 사랑,세 번째

3. 내 엄마와 내 아빠의 재회 이야기

by 구름조각

오래 살던 동네 이야기

L은 생일이 빨라서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키도 작으면서 한 살 많은 친구들과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L이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L의 동생 5명과 내 동생까지 졸업했다. 시기 상으로 보면 74년도 즈음 이사를 와서 L의 부모님은 한동네에서 47년째 살고 있는 셈이다.


이 동네의 사거리 모퉁이 집에서 방앗간을 하면서 먹고살았다. 요즘에는 방앗간을 이용할 일이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떡도 하고, 가루도 빻고, 참기름, 들기름도 받아먹어야 하니 방앗간에 가야 할 일이 많았다. 특히 명절에는 온 동네 집들이 기름 짜고, 떡 해가느라 집에 늘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럴 때는 일손이 부족해서 6남매가 다 팔을 걷어붙여야 했지만, 둘째이자 장남은 자주 땡땡이를 쳤다.


방앗간에서 번 돈을 모아 초록색 대문이 있는 2층 양옥집을 샀다. 1층은 가게로 세를 주고, 2층 방 집에서 가족들이 살았다. 그럼에도 6명은 너무 많아서 막내아들은 큰 할머니와 방앗간 근처의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고, 셋째 딸은 작은 엄마 집에서 얹혀살았다. 한 동네에서 L의 식구들, 작은 집 식구들, 큰할머니의 식구들이 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살았던 셈이다.


L의 어머니는 요즘 말로 치면 동네 인싸 같은 분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동네에 있는 평상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생생하다. 민아네 미용실에서 다 같이 머리를 볶고, 철마다 콩을 까거나 멸치 똥을 떼는 소일거리를 하시면서 동네가 떠나가라 호탕하게 웃으시던 풍경. 이야기 소재는 골목 끝 2층 집에 살던 미친 언니일 때도 있었고 이웃집 배씨 아저씨가 새로 산 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L과 동생들이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인사를 여러 번 했어야 했다. 다 아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헤어지자고 한 그날의 사건

이별통보를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저녁상을 차려 먹고 이래저래 정리하고 보니 시간이 벌써 저녁 10시쯤이었다. 여동생들이 돌아가면서 머리를 감고 잘 준비를 할 때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옆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서 주정이라도 부리는 걸까? 그런데 소리가 꼭 우리집 대문 앞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술 취한 남자가 L의 이름을 외쳤다. 동네 사람들 다 아는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치니 동생들이 다급히 달려왔다.

언니! 밖에서 누가 언니 찾는데?

L은 화장실에 쪼그려서 세숫대야에 받은 물로 머리를 감다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둘둘 말고 뛰어나왔다.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던 남자는 P였다. 술을 꽤 마신 모양인지 벌써 대문 앞에서 대자로 뻗어 있었다. P의 친구가 옆에서 얼른 일어나라고 부축하려는데, 본인도 술을 꽤 마신 모양인지 몸을 못 가누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잘 준비나 하는 시각에 여기저기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L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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