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L의 사랑,두 번째
2. 내 엄마와 내 아빠의이별 이야기
먼저 헤어지자고 한쪽도 L이다.
L이 85학번으로 입학한 당시의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L이 다니던 대학에서 비밀리에 광주사태를 알리는 사진전시회가 열렸다. L이 다니던 여대에는 순식간에 민주화의 불길이 붙었고, 신입생들까지 입학하자마자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시위에도 많이 나섰다. L은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 뿐만 아니라 학내 입학비리나 교수 성추행 사건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P는 종종 최루탄 냄새를 묻혀오는 L이 못마땅했다. "몸집도 작은 게 겁도 없이 시위에 다닌다."고 나무랐다.
P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술집에 가거나, 시험기간엔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주말이면 산악회 동기들과 산에 올랐다. 근처 산은 물론이고 설악산, 지리산에도 올라서 텐트를 치고 술을 마셨다. 그 시대에는 캠핑이란 개념도 없었으니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워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도 가능했다.
그에게는 사회가 시끄러운 게 남 일 같았다. 실제로 자신의 삶과 크게 관계가 없기도 했다. 민주주의 보단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고, 이번 산행을 어디로 가야할지 정하는 게 더 중요했다.
P는 항상 자기의 삶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고, L은 타인의 삶이 자기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둘은 모든 것들에서 정반대의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옷을 입는 것, 취향, 관심사, 세상을 보는 세계관까지. 서로 달라서 끌린 만큼 서로 달라서 이해할 수 없었다. 20대 초반의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사귀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간단했다.
L이 헤어지자는 말에도 P는 별 말없이 그러자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왜."라고 묻는 말에는 어떤 슬픔이나 아쉬움보다 정말 이유가 궁금할 뿐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P의 질문이 가벼운 만큼 L도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우리는 잘 안 맞는 거 같아.
말하지 않은 P의 사정
그러니까 이게 다 자존심 때문이다. 여자들만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남자들은 특히 자존심에 관한 문제에서는 여자들보다 답답하게 구는 때가 많다.
P는 늘 주머니 사정이 빠듯했다. 가끔 데이트라도 하고 L을 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차비도 없었다. 그럼 북구에 있던 L의 집에서 남구에 있는 자기 집까지 뚜벅뚜벅 걸어서 가곤 했다. 밤 11시에 헤어지면 새벽 3시에 집에 도착했다.
L은 그 이야기를 결혼한 지 20년쯤은 돼서야 처음 들었다. "그때 돈 없다고 얘기를 했으면 내가 택시비라도 챙겨줬을 텐데!" 뒤늦게 안타까운 마음에 동동 거려도 P는 빙긋 웃었을 뿐이다. "그땐 뭐. 젊었으니까." 22살땐 새벽에 4시간씩 걸어 다녀도 거뜬했었다. 되려 그게 낭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여동생을 대하듯이 툭툭 건드리면 L이 발끈한 강아지처럼 달려드는 게 재밌었을 뿐이다. 커피숍에 오래 앉아 있으면 마땅히 할말이 없어 머쓱하기만 하고, 영화를 보면 시간은 잘 가지만 표값이 너무 비쌌다. 선배들이 술자리에 부르면 으레 선배들이 사주겠거니, 여자 친구도 데려갔을 뿐이다. L은 술도 곧잘 마셨으니 별로 싫어하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P가 보기엔 L의 집은 자기보다 사정이 좋았다. L이 다니는 대학은 사립대였고 서양미술학과는 이래저래 사야 할 미술용품도 많았다. L은 본인이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집에서 학비를 대줄 정도가 된 거다. 그렇게 애써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이 북적이는 집은 P에게는 퍽 낯선 분위기였다.
P는 30년도 훌쩍 넘은 그 날을 아직까지도 똑똑히 기억한다. 선생님이 진학 상담차 어머니를 부른 날, 시장에서 일하던 허름한 옷차림으로 학교에 찾아온 어머니를. P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서울대도 무리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도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바로 위에 형도 있는데 둘째 아들을 서울까지 보낼 형편이 안됩니다." 그날부터 P는 학교 선배들과 술도 마시고 산도 더 자주 올랐다. 집안 형편에 따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P는 지금도 명절에 모이면 그때 서울대 갈 수 있었는데 엄마 때문에 공부 안 한 거라고 말하고, 그의 어머니는 네놈이 선배들이랑 산 타러 다닌다고 공부 안 한 거지 간다고 했으면 보내줬다고 호통을 친다. 어머니의 고생을 헤아려 물러난 둘째 아들의 사정과 그래도 아들이 끝까지 욕심냈으면 얼마 없는 가산을 팔아서라도 보내줬을 거라는 노모의 사정.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다.
P는 그런 성격이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알아서 물러나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L의 말에도 많은 걸 묻지 않고, 뒤늦게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