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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r 06. 2023

불륜, 끈적하고 농밀한...

<불륜>-비비

    어느 저녁 9시 53분, 카페 마감을 7분 남겨둔 시간이었다. 4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카페로 들어왔다. 남자는 넥타이 없이 캐주얼한 회색 정장을, 여자는 검은색 블라우스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여자 혼자 드립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아차, 기계는 이미 청소를 끝냈는데...' 커피를 내리는 데 5분이나 걸리고 남은 커피는 그대로 폐기한 후에 기계를 다시 청소해야 한다. 직원 입장에서는 번거롭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객에게 묻는다. 


"고객님, 드립 커피 내리려면 5분 이상 걸리는데 괜찮으세요?"

"상관없어요."


'아... 저희 퇴근 시간에 상관있거든요."

    

    마지막 말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고객님은 아마 유난히 '5분 이상'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느끼지 못했나 보다. 어차피 카페 노동자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다. 5분 동안 커피를 내리고 한잔의 향긋한 커피를 고객에게 건넨 다음 남은 커피는 고스란히 버려질 것이다. 기계는 처음부터 다시 청소해야 하겠지만, 그건 손님이 알 바가 아니다. 다만 이런 전후상황을 장황하게 말해야 '왜 내가 여자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커피를 주문한 남녀는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카운터에서 여자의 얼굴이 보였고 남자의 등이 보였다. 커피를 내리며 흘깃 훔쳐본 여자의 눈빛이 뭔가 이상했다. 마주 앉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은 대단히 집중되어 있었다. 그 깊고 진하고 집요하게 한 대상을 응시하는 눈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고객들이 오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커플이다. 소개팅을 하는 남녀, 갓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남녀, 연륜이 느껴지는 부부들이 커피를 마신다. 두 사람의 애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는 역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어색함과 호감이 느껴지면 소개팅. 두 사람의 눈빛이 약간 취한 듯하고 서로의 몸이 밀착되어 있을 때가 '애정도 최상'의 상황이다. 결혼한 부부들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부는 아이를 쳐다보고, 중년 이상의 부부들은 대체로 서로의 눈을 보지 않는다. 


    중년의 남녀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는 확실히 낯선 것이다. 늦은 사랑이라고 치기에도 조금 진득한 느낌이 드는 눈빛이었다. 두 사람이 나간 후 직원과 나는 동시에 입이 터졌다.


"저 사람들 불륜 같지?"

"나도 그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청소할 때 보니까 테이블 밑으로 둘이 발장난 하고 있더라고..."

"불륜 맞네... 어쩐지 여자 눈빛이 끈적하더라."


늦은 밤, 중년의 커플 사이에 흐르는 농밀한 눈빛과 은밀한 발장난.

어쩐지 비밀스러운 몸짓과 숨기지 못한 욕정.

마치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보낸 소리 없는 시그널을 제3자가 눈치챘다는 건 전혀 모르는 순진함.


    커피를 내리는 5분의 시간은 풋풋한 첫사랑들처럼 헤어지기 못내 아쉬워 좀 더 붙잡아 놓기 위한 핑곗거리였을까? 아니면 방금 있었던 뜨거운 정사(事)의 여운을 느끼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다시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 몸에 묻은 냄새를 덮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깊고 진한 커피의 향은 어쩐지 불륜의 냄새와 닮았다. 뒷맛이 텁텁하고 씁쓸한 것도 부적절한 관계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매장 청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여전히 그 여자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관계는 여자에게 무료한 일상에서 한줄기 숨통이 되어준 장난일까. 아니면 남들에게 들키지 못하는 사랑이었을까. 


    사랑과 재채기는 숨기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불륜도 그렇다. 그건 숨기기엔 너무 뜨겁고 끈적하고 어쩐지 쾌쾌한 냄새가 나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wqGr9_zh0S0

<불륜>-비비

사랑 말입니다
대중없습니다
내 품 조각을 도려가
당신의 배를 불려도
거뜬히 내어 줄 만큼
그대를 합니다

약속 말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내 머리칼을 오려가
그대 자식을 입혀도
거뜬히 기다릴 만큼
그때를 합니다

사랑을 합니다
몰래 해봅니다
내 깊은 곳에 적어서
매일 밤 나를 떠날 때
마지막 때 쓴 포옹에
묻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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