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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r 25. 2023

부산 뒷골목, 그라피티 같은 노래

<낙서>-헤서웨이

    가끔 인생은 기막힌 타이밍에 선물을 준다. 선물이란 그리 대단하지 않아서 '우연히 좋은 노래를 발견하기''책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발견하기'의 따위 것들이다. 난 쉽게 홀리고 쉽게 취하는 여자라 3분짜리 노래 한 곡으로도 일주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깊이 몰입하는 것이 영감을 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떠났다. 가는 길에 부산 출신이 모여 만든 밴드 해서웨이의 낙서를 들었다. 한 명의 남자 드러머(최세요), 한 명의 여자 베이스(이특민), 한 명의 남자 기타이자 보컬(강키위).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드럼, 베이스, 기타의 단출한 조합. 밴드의 이름 헤서웨이는 미국의 소울 R&B가수 도나 해서웨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밴드의 결성 과정이 독특한데 고등학교 밴드부 지도 선생님이었던 강키위가 당시 여고생이던 이특민을 영입했다. 선생님이 학생을 밴드의 베이스로 영입하고 이전에 알고 지내던 드러머 최세요와 함께 3인조 혼성 밴드가 결성되었다. 밴드의 여러 곡들은 강키위가 작곡을 하는 편이다. '낙서'의 곡은 강키위가 만든 기타 리프에 최세요가 가사를 입히고 이특민이 가이드를 불러 완성했다. 이 곡이 유명세를 타서 홍대 인디 공연장에 서게 되었고 공연 영상은 30만 조회수를 뛰어넘었다. 


https://brunch.co.kr/@a01022928909/748

    지난 글에서 부산 출신의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이 결성한 도시의 그림자라는 밴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어쩐지 R&B를 기반으로 한 두 밴드가 평행이론처럼 느껴진다. 그저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의 조합과 부산에서 결성된 밴드라는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두 밴드의 평행이론을 주장하는 나도 퍽 대책 없이 낭만적인 인간이다. 낭만적인 사람들은 아무 상관없는 두 개의 사실로도 운명이나 계시 같은 것을 운운한다. 어느 날 우연히 뜬 무지개에 신의 메시지라고 기뻐하기도 하고, 그저 가던 길 가는 검은 고양이에게 혼자 불행의 전조라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료한 삶에는 낭만이 필요한 법. 두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부산이라는 도시의 구석구석 작은 공간들을 여행하고 왔으니 이 낭만은 유효하다. 에어팟에 이 노래가 흐르지 않았다면 부산이 그토록 특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보통의 존재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재해석하는 것.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도시의 그림자가 부른 <이 어둠의 이 슬픔>이라는 곡과 헤서웨이가 부른 <낙서>라는 곡의 온도가 사뭇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니다. 두 노래 모두 이별에 대해 노래한다. 그러나 이별에 담는 정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깊이가 다르다. <이 어둠의 이 슬픔>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한 번만 사랑했다고 말해달라'라고 처절하게 외친다. 한 몸처럼 붙어 있던 사랑이 통째로 뜯겨나간 듯 괴로워한다. 그 슬픔의 정서는 깊고 실로 비통하다. 요즘 사람들은 '비통하다'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그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웨이가 부르는 <낙서>는 조금 더 담담하다. 두 사람의 감정이 식고, 어색하고, 불편해진다. 사랑했던 관계에도 여전히 둘 사이의 벽을 의식하고 있다. 서로의 말은 벽을 넘어서 전해지지고 않고 하고 싶었던 말은 담벼락의 낙서처럼 남아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 쪽에서만 보이고, 그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에게만 보일 것이다. 이 벽은 개인성이 도드라지는 요즘 사람들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지금 시대의 사랑은 그 벽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벽 가까이 붙어 카톡 메시지나 보내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의 애정.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모른다. 그러니 전하고 싶었던 말들은 뒷골목 담벼락의 그라피티(graffiti)처럼 남을 수밖에...


헤서웨이의 공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athaw9y/


*라이브영상이 많지만 아래 영상의 흑백톤이 마음에 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음질은 Guitarnet Live영상이 더 좋아요. 음악이나 악기는 잘 모르지만 기타의 톤이 더 잘 잡히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OFWwSiyaOUM

낙서-헤서웨이(hathaw9y)

적당히 식어가는 우리
우리의 미소들
어딘가 어색해진 두 손
조금 무거웠고

낯설게 불편해진 너의
너의 그 눈빛들
알잖아 난 이런 게 불안해

차갑게 날이 서는 우리
우리의 목소리
서로의 문장에 베이다
고개를 돌리고

너와 나 사이의 벽에는
낙서만 가득해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왜 그렇게 우린

희미해진 촛불
새까맣게 그을린 벽지

비어버린 잔들
채울 수 없었잖아 우린
우린 늘 혼잔걸

아직도 나는 잘 몰라요
당신은 어디로 떠나나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또다시 다른 이를 찾을까요

아직도 나는 잘 몰라요
당신은 어디로 떠나나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희미해진 촛불
새까맣게 그을린 벽지

비어버린 잔들
채울 수 없었잖아 우린
우린 늘 혼잔걸

아직도 나는 잘 몰라요
당신은 어디로 떠나나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또다시 다른 이를 찾을까요

언젠가 조금 더 알겠죠
그때의 우린 어디쯤일까요
지금의 우린 어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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