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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Feb 28. 2023

아버지의 추억 속 목소리

<이 어둠의 이 슬픔>-도시의 그림자

    아버지는 박치고 어머니는 음치다. 타고나길 음악적 재능과는 영 상관없는 집안이다. 가족들 모두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고 노래 실력도 영 신통치 않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끔 유튜브로 추억의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신다. 듣기에 영 괴로운 노래 실력이지만 아버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려니 이해하고 넘어간다. 아버지는 노래를 매개로 추억 여행중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억눌러 놓았던 감정을 해소하는 중일 수도 있다.


    얼마 전 가족들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노래를 한 곡 틀어 주셨다. 과거 영상인지 음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첫 소절의 목소리는 제법 매력 있었다. 아니, 제법 매력 있다는 설명은 부족하다. 요즘 가수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울풀하고 흐느끼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목소리였다. 또박또박 전달하는 가사와 정확한 음정, 박자 감각도 훌륭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귀에 탁탁 꽂히는 노래 실력이었다.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아빠 젊었을 때 들었던 노래야?"

"이게 86년 강변가요제 나왔던 곡일걸?"

"86년이면 아빠는 몇 살이었어?"

"아빠가 84학번이니까..."

"한창 산 타고 다니면서 술 마시고 다닐 때지?"


    갑자기 끼어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투닥거리는 동안 밴드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두 분은 고등학생이던 시절 산악회 활동을 하다 처음 만나 대학생이 되고부터 연애를 하셨다.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넘지만 가끔 오래된 캠퍼스 커플에게나 보이는 애정싸움을 하신다. 서로를 놀리고 귀찮게 하면서도 상대의 기분을 달래주는 법을 잘 아는 친밀한 커플 같다. 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놀리고 토라진 어머니를 달래주는 패턴이다. 난 저런 싸움을 30년이 넘게 봐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남들이 보면 시트콤의 한 장면일 지도 모른다.


    보컬리스트의 목소리에 홀려 이 밴드에 찾아보기 시작했다. 밴드의 이름은 '도시의 그림자'. 동의 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이 김종호, 김영수가 '이 어둠의 이 슬픔'을 작곡했다. 두 사람은 부산의 유명 음악 서클 무드 출신이라고 하는데 '바다새'와 '높은 음자리'도 이 서클 출신이라고 한다. 서클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음악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모임인 것 같다.


도시의 그림자

바다새

높은 음자리


    옛날 밴드의 이름들은 어쩐지 순수하게 느껴진다. 산울림이나 송골매, 들국화, 무한궤도... 요즘 밴드들의 이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옛날 감성이 되려 신선하다. 1980년대는 이런 락밴드들이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하고 앨범을 내면서 한국 록음악의 기반을 닦았던 시기라고 한다.

    노래를 잘 듣다 보면 보컬이 "불빛에 머문~"하고 강하게 지른 후 "젖은 나의 눈빛.."하고 힘을 톡 빼는 부분이 있는데 이 강약조절이 끝내준다. 강변가요제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해 가창상과 금상을 수여했다. 유튜브 영상 댓글 창에 보컬 김화란에 대해 적어놓았다. 집안에서 가수활동을 반대해서 정식으로 가수활동은 못 했다고 한다. 이렇게 뛰어난 여성 보컬리스트가 단 하나의 앨범을 끝으로 유학을 가버렸다니... 여성에게만 가혹했던 과거의 편견들이 야속하다.


"요즘에는 이런 가요제 같은 게 있나?"

"글쎄... 유재하 가요제가 있긴 한데, 옛날처럼 가요제 수상해서 데뷔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


    K-POP이 전 세계의 인기를 끌고 있다는 요즘. TV를 보면 신선하고 개성 있는 가수들 보다는 데뷔전부터 학원이나 기획사 연습생으로 갈고 닦여진 아이돌들이 넘친다. 그들도 피땀 어린 노력을 했고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유한 개성이나 독특함은 깎여지고 만다. 요즘 대중가요는 정말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획사 돈벌이용 상품으로 전락한 것 같아 아쉽다. 신선함과 독특함을 찾아서 과거의 노래나 인디밴드의 음악에 관심이 기우는 지도 모르겠다.


    재능이라는 것은 존재만으로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이론이나 논리적 이해 없이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재능은 스스로 빛이 나는 별 같은 존재다. 군계일학이라는 말처럼 닭 무리 속에서도 고고하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 무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부산 동의대 김종호

부산 동의대 김영수

부산 산업대 김화란


이 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1UgDXWuM42c

<이 어둠의 이 슬픔> -도시의 그림자

꺼지는 듯 흔들리는 도시의 가로등

가슴에 흐르는 너 나의 슬픔은

한 조각 슬픈 노랫소리로

어둠에 흩어져 가네


허공을 가득 메운 눈물 같은 네온등

이슬에 흐려지는 그대의 눈빛이

한 조각 어둔 바람 소리로

한없이 깊어만 가네


돌아선 그대 다시 한번 말을 해주오

오직 나만을 사랑했다고

떠나는 그대 다시 한번 고백해주오

나 그대 만을 사랑했다고


불빛에 머문 젖은 나의 눈빛

허공 속에 뿌려 버리고

가슴을 태운 이 어둠에 상심

허무한 사연 이어라


어두워진 방안에 누워 창밖을 봐요

바람결에 사라지는 그대의 그 뒷모습

사랑 잃은 슬픔은 한없이 흘러만 가네


돌아선 그대 다시 한번 말을 해주오

오직 나만을 사랑했다고

떠나는 그대 다시 한번 고백해 주오

나 그대 만을 사랑했다고


불빛에 머문 젖은 나의 눈빛

허공 속에 뿌려 버리고

가슴을 태운 이 어둠의 상심

허무한 사연 이어라


허무한 사연 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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