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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Dec 18. 2022

혼자 죽지 않는 법

코로나 블루의 기록 Day 4

    벌써 4일째 약을 먹고 약기운이 돌면 살만한가 싶다가도 약기운이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이 아픈 것이 반복된다. 자꾸 아프다 보니 누워 있으면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많아진다. 그중에 하나는 '나중에 혼자서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다. 


    책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연애는 과학이다>라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데이팅 앱에서 매칭 알고리즘을 짜다가 데이트 컨설팅을 하는 작가가 쓴 책이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가 How to not die alone이었는데 해석하자면 '혼자서 죽지 않는 법'이었다. 이해하는 순간 '젠장...' 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제목이다. 책이 입을 벌리고 낄낄 웃으면서 날 조롱하는 것 같았다. '너 그러다 혼자 죽고 싶어?' 행복한 결혼을 꿈꾸거나 아이들을 낳고 알콩달콩 사랑을 하느냐 마느냐 보다 좀 더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혼자 죽고 싶지 않아서' 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가족들이 함께 있는 집에 각자의 방에서 격리 중이다. 옆에는 고양이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의 상태를 물어봐준다. 그런데 만약 혼자 있는 집에서 코로나로 격리 중이라면, 나는 몸의 고통보다 더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숨도 쉬기 힘들고 물도 삼키기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된다. 이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 어젯밤에는 괴이한 꿈을 꾸기까지 했다. 


    꿈에서 나는 늙고 다 죽어가는 상태였는데 정신만은 또렷했다. 병원 침대에 누운 자리가 불편해서 돌아눕고 싶은데 내 옆에 앉은 간병인은 꾸벅꾸벅 조느라 내가 아무리 눈을 깜박여도 소용이 없었다. 간호사는 들어와서 내 얼굴 한 번을 들여다보질 않고 이것저것 수액이나 기구를 건드리더니 나가버렸다. 작은 불편 하나 내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고 아무도 나의 어려움을 들여다 봐주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에서 깼다. 옆에 있던 고양이가 끔벅끔벅 눈을 마주쳐 주는 것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이것이 예지몽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부가 마음이 잘 맞아 여생을 서로 아끼고 살아가느냐는 차후의 일이다. 일단은 결혼이라는 허들을 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나에게 생물학적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낀다.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면 이젠 정말로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경제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초인적인 의지력이 필요한 일이다. 덧붙여 결혼이라는 첫 단계를 뛰어넘은 후 지속되는 심리적인 어려움은 나중의 일이다. 


    문제는 정말로 혼자 죽지 않는 것이 목표라면 결혼이 그다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것을 고려해보면 남편이 나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높다. 결국 나는 혼자가 된다. 더군다나 남편이 있어도 아픈 아내를 끝까지 살뜰하게 보살피는 남편이 드물다. 예전에 암센터 앞 약국에서 일할 때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약국을 찾았다. 남편이 아프면 아내들이 약을 챙기고 남편을 보살피는 장면을 자주 봤다. 반대로 아내가 아프면 딸이 함께 오거나 혼자서 약을 받아가는 일이 많았다. 처음엔 나도 몇몇 사례를 보고 나 혼자 오해한 것에 불과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기사나 통계 자료를 찾아봐도 아내가 남편을 간병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2014년 뉴스에서 아내가 남편을 간병하는 비율은 96.7%에 달하고, 2019년 자료에서는 '신체활동 지원 부분'에서 86.1%의 비율로 남편이 아내에게 의지한다. 반면에 여성은 본인이 스스로 간병하는 비율이 36.9%로 가장 높았다.(2014년 뉴스) 2019년 자료에서 남편에게 신체활동 지원 부분에서 의지한다는 아내의 비율도 36.1%에 불과하다. 당시 함께 일하던 40대 직원은 입버릇처럼 '여자가 믿을 건 돈밖에 없다'라고 나에게 일러주었다.


    자녀를 낳아 키워도 이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날 보살펴줄지도 미지수다. 예전처럼 대가족이 있는 집에서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와중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드물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낯선 간병인들과 간호사들의 의료서비스를 받다가 죽게 되는 일이 많다. 나의 큰할머니도 요양원에서 돌아가셨고, 그 요양원에는 자식이 7명이나 되는 할머니도 계셨다. 자식들 사연이야 나름대로 구구절절하겠지만, 자식이 7명을 낳아 길러도 죽을 때는 요양원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자식을 낳든 안 낳든 마지막에는 차가운 병원 침대에서 가쁜 숨을 헐떡이다 외롭게 죽을 확률이 가장 높다. 아무래도 어제 꾼 꿈은 재수 없는 개꿈이 아니라 예지몽인 모양이다. 현실을 인정하면 되려 마음이 차분해지기 마련이다. 담담하게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방법이나 궁리해봐야겠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436553#home

https://www.yna.co.kr/view/AKR201905080529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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