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의 기록 Day 6
벌써 6일 차, 기침이 줄고 열이 내렸다. 몸상태는 호전되었지만 곧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질 하다. 코로나 확진을 받기 전 새로운 매장으로 배치받았다. 첫 정식 출근을 앞두고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서 나도 마음이 불편했다. 본의 아니게 일을 쉬어야 했지만 다시 출근하면서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괜히 허벅지와 엉덩이를 꾹꾹 눌러봤다. 그동안 열심히 만들어 둔 근육이 다 녹아버린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는 무리 지어 생존하는 종족이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손톱도 강인한 체력도 없는 인간이 살아남는 방식은 협력이었다. 그러니 '관계'라는 것은 인간에게 생존의 문제이다. 무리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만큼 생존에 위협적인 것이 없다. 직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고, 늘 사람들이 오고 가는 카페라는 공간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나의 작은 방에 갇혀 지낸 경험은 힘들기도 했지만 짧은 휴식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연결'에 고통받다가 모든 것을 끊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카톡과 사내 메신저는 끄지 못했지만 말이다.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나는 갈등을 회피하는 회피형 인간이다. 싸울 것 같으면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마음을 닫아버린다. 가까운 관계이든 먼 관계이든, 내가 회피형 인간이라는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남자 친구와 이별할 때는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장문의 카톡만 남긴 채 연락을 끊어버린 일도 자주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욕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여러 번 상대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이 실망하고 충분히 괴로워했다고 믿었다. 관계에서 둘 다 서로의 바닥까지 보여줬고 사랑했던 추억까지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을 나 혼자 준비하고 통보하듯 끝낸 건 마지막 복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준비되고 내가 다치지 않을 때 내 손으로 끝내고 싶었다.
직장에서도 나는 되도록 싸우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싸움에 쏟는 에너지는 둘째고 내 평판이 망가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갈등을 일으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참는 것이 미덕이고 조금이라도 동료들과 삐그덕 대면 이유를 불문하고 나에게 꼬리표가 붙는다. 문제는 그렇게 참고 나면 내 감정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무례한 말을 했지만 그 말보다 더 큰 상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이다. 차라리 해명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일도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일은 피로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더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나라고 이런 내 모습을 모를까. 이미 상담도 받고 심리학 책도 많이 읽어봤다. 그런데도 내가 회피형 인간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 문제를 고치려다 변할 수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애착 이론을 공부해서 얻은 것은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망치는지 조금 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뿐이다. 나의 작은 방에 틀어박힌 지 6일째 다시 사회로, 관계로 뛰어드는 일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