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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Dec 22. 2022

평화롭고 일상적인 하루

코로나 블루의 기록 마지막.

    몸이 한결 가벼워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불을 세탁하는 것이었다. 일주일간 누워 있느라 꼬질꼬질해진 이불을 싹 걷어내고 매트리스도 한번 뒤집었다. 너무 오래 누워있던 모양인지 내 엉덩이 모양으로 매트리스가 움푹 주저앉았다. 정말 내 엉덩이가 무겁긴 한 모양이다. 보송보송한 새 이불을 싹 갈고 간단한 청소를 하고 보니 벌써 지쳐 버렸다. 코로나 때문인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다시 일터에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단톡방에서 동료들이 나눈 대화들을 다시 살펴봤다. 놓친 소식이 없는지, 바뀐 것들은 없는지 다시 되새겨 보면서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온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일주일 만에 커피를 만들고 음료를 만드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급한 마음에 레시피북도 다시 살펴봤다. '가서 멀뚱멀뚱 서 있으면 어떡하지? 한 사람 몫은 해야 할 텐데......' 


    일주일 만에 저녁 준비를 했다. 새콤달콤한 소시지 떡볶음과 메추리알 조림, 칼칼한 고추장찌개. 미각이 둔해진 모양인지 메추리알 조림은 싱겁고 소시지 떡볶음은 짜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건 고추장찌개뿐이다. 일주일 동안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던 채소를 다 넣었다. 싹이 난 부분을 도려낸 감자, 싹이 파릇파릇한 양파, 시들어 빠진 대파와 청양고추. 그래도 찌개와 반찬 냄새가 나는 주방에는 생기가 도는 것 같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긴장한 마음으로 출근한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반겨준다. 서로 건강을 물어주고 기운 내라고 응원해주는 짧은 말들이 마음을 녹여준다. 세상은 늘 나의 두려움보다는 다정한 곳이다. 허둥지둥 대다가도 천천히 차근차근 기억을 떠올려서 일한다. 우유에 뽀얀 거품이 일어나고 향긋한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따뜻한 커피를 담아 고객을 부르면서 "맛있게 드세요." 상냥한 인사를 건넨다. 라떼가 맛있으면 좋겠다. 그 사람에게는 하루를 여는 커피일 테니 따뜻하고 향기롭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도 속을 뜨겁게 데워주는 커피 속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세포를 깨우고 활기를 북돋아주면 좋겠다. 


    여전히 잔기침이 심하지만 운동도 해본다. 예전보다 무게를 드는 것도 체력도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로 심하게 아팠을 때는 걸을 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압력도 괴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 발로 걷고 뛸 수 있으니 나아진 것이다. 회복하고 있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 마음도 자유로워진다. 과거의 슬픔에 머물러 있던 마음이 내일을 보게 된다.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친구들과 만날 생각에 들뜬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하얗게 눈이 내렸다. 눈을 보는 일은 오랜만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포근하게 내리는 눈에 마음이 말랑해진다. '곧 크리스마스구나.' 가족들과 작은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어야겠다. 다 함께 코로나를 견딘 것에 감사하고 내년에는 더 건강해지자고 다짐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 겨울 찬 공기를 가르면 뚜벅뚜벅 걸으면서 곧 봄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겨울을 견디면 봄이 온다. 밤을 견디면 낮이 오고 슬픔을 견디면 행복이 온다. 그리고 그 행복은 평화로운 일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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