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도덕은 환상이고 감시와 처벌이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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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일한다'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바리스타의 일이 커피 향을 즐기며 우아하게 음료 한두 잔을 만들어 상큼한 목소리로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는 게 전부인 줄 안다. 원래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는 막연한 환상이 있는 법.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배운 것은 모든 직업은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과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은 다른 사람의 수고로 얻는다는 것이다.
바리스타는 경계선에 있는 직업이다.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고,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해야 하고, 동시에 매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들에도 대처해야 한다. 물품을 옮기거나 우유 박스를 옮길 때는 육체적인 힘도 많이 쓴다. 그들 모두 맡은 바 일을 성실하게 해내지만, 사회의 인식은 시급제 카페 알바 취급이다. 기술직과 감정노동과 육체노동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바리스타의 영역인 것이다.
비가 많이 온 날 배수관이 역류해 2층부터 물이 넘치더니 매장 전체가 침수된 적도 있었다. 계단으로 물이 흘러내리고 1층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다. 매장에 가득 찬 물을 손으로 퍼내고 수없이 밀대로 닦고 말려야 했다. 오전에 전체 매장이 침수되었지만 점심시간부터 정상적으로 영업을 재개했다. 손님들은 오전에 침수된 매장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객들에게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런 게 프로페셔널 아닌가?
매일 재료의 유통기한을 체크하고, 집기류 소독과 청소를 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고, 밀려드는 주문에도 커스텀대로 정확한 음료를 만들어서 친절하게 제공하는 일. 이 모든 일을 성실하게 했고 남 부끄럽지 않게 일했다. 이런 것에서 스스로에 대한 긍지 같은 것을 느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적은 돈을 벌더라도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일했다는 것 말이다. 오직 '스스로에게 정직함'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자부심이다.
정직함.
가끔 외국인들이 방송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한국에서는 카페에 물건을 두고 가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찬양할 때가 있다. 그 이유가 한국인들이 특별히 더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카페 테이블에 올려진 아이패드는 훔치지 않아도 자물쇠로 걸어둔 자전거는 훔치는 나라 아닌가.
이런 문화는 개개인의 미덕이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곳곳에 설치된 CCTV와 타인의 수상쩍은 행동을 모른 체하지 않는 오지랖이 이런 문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맞는 사건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 날 백룸에서 설거지를 하고 나왔는데 매장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무슨 일이에요?"
"유리가 깨졌어요."
"유리? 무슨 유리?"
"2층 창문 유리가 떨어져서 깨졌어요."
유리는 매장 입구 쪽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매장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10초라도 늦었으면, 손님이 커피를 받아 매장을 나가는 순간이었다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평소 2층 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테두리에 실리콘 시공까지 해놓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억지로 창문을 열었다가 유리가 떨어져 깨진 것이다. 창문이 열린 위치를 확인하고 2층에 올라갔다. 창가에는 젊은 부부와 어린 아기가 앉아 있었다. 창문을 살피고 돌아서는데 젊은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가 움찔 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 저 사람이 깼구나.' 인간에게는 논리나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라는 게 존재한다.
내려가서 매니저에게 알렸다. '창문 옆에 젊은 부부가 있던데 여자분이 깬 것 같아요.' 그런데 매니저가 올라가서 물어보니 자신이 깨지 않았다고 했단다. 확실한 물증도 없이 사람을 몰아갈 수는 없으니 다시 내려와서 유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유리파편들은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끼여 쉽게 빠지지도 않았다. 한참 매니저와 유리를 치우고 있는데 어떤 커플이 다가왔다.
"아까 저희가 봤는데 2층 창가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창문 연 거 맞아요. 남편이랑 아기랑 같이 앉아 있던. 아까 직원 올라왔을 때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기 아니라고 거짓말하더라고요."
만약 사고가 난 직후 그 손님이 와서 실수였다, 미안하다, 다친 사람 없느냐고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직원들이 사과했을 것이다.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 위험하니까 우리가 치우겠다. 신경 쓰지 마시라.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뻔뻔하게 본인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고 목격자가 제보하는 이 상황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왔다는 말을 꺼내자 젊은 엄마는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애초에 문을 열면 안 된다는 안내문도 없었지 않냐.
나는 문 열면 안 되는지 몰랐다.
공기가 답답해서 환기 좀 시키려고 그랬다.
창 좀 열었다고 유리가 깨지면 애초에 시공이 잘못된 거 아니냐?
창틀에 발라놓은 실리콘이 무색해지는 말이었다. 이 고객은 유리가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이 피 흘리며 쓰러졌어도 이렇게 말했을까.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서 상황을 모면하려 거짓말이 톡 튀어나왔을 수도 있다. 그래도 두 번째에는 조금이라도 실수라고 인정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결과적으로는 고객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매장과 건물주가 창문 수리를 부담하는 것으로 끝났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더 꼼꼼히 창틀을 실리콘으로 메웠고 안전한 유리로 재시공했다. 그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마 그 젊은 엄마일 것이다. 그는 앞으로 자기 아들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없을 거다. 남편이랑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지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을 것이고, 그 때문에 매장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가장 마음이 불편할 사람은 그 사람인 것이다. 결국 가장 상처 입은 것은 그 여자의 내면이다.
정직함.
정직함은 타인을 위한 미덕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한, 자기 자신을 위한 미덕이다.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거나 작은 이익을 위해 거짓말할 때마다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나는 타인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시선이다.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지라도 자신의 시선은 피할 수 없다. 거짓말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어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싶으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