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페투어(7)-북유럽 감성의 딥 블루레이크
이미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꽤나 길치입니다. 그것도 긍정적이고 자신만만한 길치라서요. 잘 모르는 길도 휘적휘적 걷다가 엉뚱한 곳에 도착하기 일쑤예요. 서울 와서도 하루에 한 번씩 지하철을 반대로 타거나 다른 출구로 나갔습니다. 이날 하루만 만 오천보를 걸었던데 아마 오천 보는 길 잃고 헤매는 걸음수였을 거예요.
원래는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271번을 타고 서울시립미술관을 가야 했답니다. 그런데 방향을 반대로 탔지 뭐예요. 지도를 보니 망원동 쪽으로 가고 있더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망원동에 내려서 딥 블루레이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망원시장을 통과해 카페로 가는 길이 참 좋았어요. 망원동은 참 예쁜 동네인 것 같습니다. 길가에 작은 식당과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도착한 딥 블루레이크, 이름답게 선명한 파란색이 청명한 하늘과 잘 어울리네요.
어쩌다 망원동, 딥 블루레이크
주소 : 서울 마포구 포은로 6길 11
인스타그램
-망원 본점 https://www.instagram.com/deepbluelake_mangwon/
-로스터리 https://www.instagram.com/deepbluelake_roastery/
홈페이지 : 딥블루레이크커피&로스터스 (deepbluelakecoffee.com)
1. 티 라이크 커피와 노르딕 로스팅
깨끗하고 맑은 티 같은 커피를 '티 라이크 커피(Tea like coffee)'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커피의 구수한 맛, 씁쓸한 맛과는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선 생두를 로스팅하는 단계에서부터 달라야 합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레어- 미디엄 -웰던 순서로 익힘 정도가 다른 것과 비슷합니다. 라이트 로스팅-미디엄 로스팅-다크 로스팅 순서로 오래, 강한 열로 생두를 볶은 것이죠. 일반적으로 라이트 로스팅에 가까울수록 향과 산미가 강조되고 다크로스팅에 가까울수록 묵직한 바디감과 다크 초콜릿 같은 쌉싸름한 맛이 강해집니다.
딥 블루 레이크가 추구하는 커피는 향기 강하고 신맛과 단맛이 적절하며 뒷맛이 깔끔한 맛입니다. 이런 맛을 내기에는 라이트 로스팅이 적합하고 이런 로스팅을 북유럽에서 선호하기 때문에 노르딕 로스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타벅스에서 자주 마시는 다크로스팅이 미국 스타일 로스팅이라면, 딥 블루레이크의 라이트 로스팅은 북유럽 스타일 로스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라이트 로스팅으로 향미와 맛의 밸런스를 잡으려면 로스팅 기술보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생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깊고 푸른 호수와 무명 씨
어떤 커피를 할지 정한 후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정한 것이 딥 블루 레이크입니다. 깨끗하고 맑은 커피와 깊고 푸른 호수의 이미지가 잘 어울리죠. 자연스레 인테리어나 브랜드를 대표하는 색도 맑은 파란색이 되었을 겁니다. 이게 좋은 카페 브랜딩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지향하는 커피 스타일과 거기에 맞는 상호명, 연관성 있는 인테리어나 대표색상. 개연성 있고 쉽게 납득이 되는 브랜드 스토리가 고객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벽에 붙은 고양이 스티커들은 지금가지 딥 블루레이크에서 소개했던 커피들의 이름입니다. 니카라과,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엘 살바도르 등의 산지 이름도 보이고, 유투버 삥타이거와 콜라보한 블렌드도 보이네요.
한국에서는 산미 있는 커피에 대한 호불호가 강합니다. 누룽지처럼 구수하고 초콜릿 같은 단맛이 있는 커피가 대중적이죠. 그럼에도 커피를 좋아해서 북유럽의 로스팅 스타일을 배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풍부한 향의 스페셜티 커피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열리지 않나요? 딥 블루레이크의 마스코트, 고양이 무명 씨가 그려진 패키지를 보면 저절로 원두 한 봉지를 구매하고 싶어 집니다.
3. 아기자기한 감성 인테리어
일단 여기 사장님은 귀여운 걸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어요.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에 곳곳에 예쁜 소품들이 비치된 내부 공간이 편안하고 사랑스러워요. 2층은 딥그린이 주요 컬러이고 3층은 선명한 코발트블루가 주요 색인데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 놓으셨어요. 편안하면서도 경쾌한 감성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1층 바 반대편에는 로스팅 랩으로 사용하던 공간이 남아있어요. 지금은 로스팅 공간을 따로 구해서 로스팅과 원두 포장을 진행하고 계시더군요. 이 공간의 집기류를 빼고 손님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벽면을 둘러 테이블이 있으니 의자만 가져다 놓고 혼자 온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꾸미는 거죠.
4. 플랫화이트
아침 첫 커피라서 플랫화이트를 선택했어요. 산미 있는 원두와 고소한 우유가 만나면 향긋하고 가벼운 플랫화이트가 됩니다. 일반적인 라떼보다 우유가 적기 때문에 원두의 풍미를 잘 느낄 수 있어요. 트레이가 흔들려서 라떼아트가 망가진 게 아쉽네요. 개인적으로는 묵직한 바디감에 진한 단맛이 느껴지는 커피를 선호하지만, 이런 가볍고 깔끔한 커피가 부담스럽지 않아서 아침에 마시기 좋다고 생각해요.
5.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딥 블루레이크의 사장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카페를 시작하셨다고 해요. 원두 로스팅에서 고양이 캐릭터에 소품까지 사장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돼요.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힘들거든요.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고 해도 인생이 편안해지지는 않더라고요. 조금이라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완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랑하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