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Sep 12. 2023

고양이와 헤어지는 중입니다(4)

보호자

#10

우선 의사의 진단은 다음과 같았다.

진숙이의 배에 생긴 멍울은 유선종양으로 추정되고 악성일 확률이 80%에 달한다. 조직검사를 할 수는 있지만 굳이 검사만을 위해 마취를 하진 않고, 수술로 배의 가죽을 잘라내면 조직 일부를 떼어 검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검사 후 악성, 암인 것이 확정되면 항암치료를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 수술을 결정해야 조직 검사를 할지도 선택할 수 있는 거네요?"


"네. 그런데 보호자님. 보통 고양이의 수명이 15살 정도인데, 진숙이는 벌써 14살이거든요……"


‘그런데요?’

머릿속에 의문문이 떠올랐다.


고양이의 수명이 평균 15세라는 정보와 진숙이가 14살이란 정보

그 사이 1년의 간극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짧은 문장.

낱말과 숫자.

주어와 서술어.

수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질문이 떠오른 것은 내 머리가 직면해야 할 사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숙이는 14살.

고양이의 수명은 15살.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11

인간의 정체성은 시간, 공간,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관계를 맺었고, 그 안에서 내가 경험한 역할의 총체가 나의 정체성인 것이다.


관계 속에서 나는 진숙이의

집사였고, 엄마이자, 언니였고, 반려묘의 반려인이었고,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보호자였다.


그 정체성 속에서 가장 좋아했던 역할은 진숙이의 보호자였다.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이름. 짓눌리지 않을 만큼의 책임감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숙이의 수명을 갉아먹을지도 모르는 수술을 결정해야 했을 때는 그 보호자라는 이름이 나를 짓누르고 옥죄고 내몰고 있다고 느꼈다.


가장 애통한 점은

그 책임의 무게를 지고 하나의 선택을 한다 해도,

진숙이와 이별해야 한다는 결말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곧 내 고양이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날 울게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