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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ug 07. 2023

고양이와 헤어지는 중입니다(3)

회상

#7

작은 영웅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반복되는 공부와 지루했던 고3생활에 활기를 느낀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함께 동물병원으로 무단 외출을 감행한 친구는 고양이 별명을 ‘상팔자’로 지어야 한다며 웃었다. 다른 친구들은 진숙이의 사진을 돌려보고 새끼 고양이의 구조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러다가도 담임이 들어오면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우리만의 비밀이 생긴 것에, 작은 일탈은 한 것에 모두 공범자가 된 것 마냥 유대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을 듣는 내내 진숙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얼른 다시 보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사랑도 이렇게 설레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첫사랑 남자아이는 고양이만큼 귀엽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으로 학교 수업에 끝날 시간만 기다렸다.


 ‘아프다고 뻥치고 조퇴할까?’


오전 10시. 집에 가려면 12시간이나 남았다.


#8

집에 가보니 진숙이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약에 취해 곤히 자고 있었다. 난 이미 이 작은 고양이에게 푹 빠져 있었고, 엄마는 불쌍한 고양이를 내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고, 남동생은 아무 생각이 없었고, 아빠는 이 불청객을 싫어했다.


털 날리고 냄새나고 시끄러운 동물. 생전 병아리 한번 키워본 적 없는 아빠가 고양이를 거부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반면 엄마는 어린 시절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다고 했다. 제멋대로 다니다 밥때가 되면 집으로 오고 어쩌다 쥐를 물어다 주는 것으로 밥값을 하는 노란 고양이였다고 했다. 그 희미한 기억이 없었더라도 엄마가 아픈 고양이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묘하게 아기의 울음소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안방에서 부모님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상자 속 진숙이에게 주문을 걸듯 속삭였다.


    “언니랑 살자. 네 이름은 진숙이야. 우리 이제 같이 사는 거야.”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진숙이는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9

인간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고정된 방향으로 흐르는 사건의 연속으로 경험한다. 파편화된 사건들 사이에서 인과를 찾고 개연성을 부여하면 마침내 이야기로 기억하고 의미를 찾는다.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이 말하기를 인간은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즉 이야기하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의미 있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매체에서 매체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생명력을 얻은 이야기는 등장인물 모두가 죽어 없어져도 영원히 살아있다. 이야기 속에서 존재는 죽음을 극복한다.


14년 전 진숙이를 데려온 날을 떠올린 것은 동물병원에서 초조하게 검사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다. 진숙이의 배를 쓰다듬다 발견한 작은 멍울이 하복부 여러 군데서 자라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게 자라고 있었을까. 조금 더 빨리 발견하지 못한 것을 탓하며 케이지에 갇힌 진숙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여전히 아기처럼 우는 나의 오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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