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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Oct 20. 2023

10억 원 주고 싶은 스타트업의 특징

스타트업 IR피칭 현장 취재

 저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전략기획팀 매니저로 일합니다. 직함은 거창하지만 하루하루 밥값 하려 애쓰는 미생이죠. 그러나 작은 스타트업이어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의사결정도 빠르고 개개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요. 그래서 저 같은 신입도 IR피칭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님들의 어깨너머로 기웃댄 IR피칭의 세계는 짜릿하더군요.


 'IR피칭'이란?

 IR은 "Investor Relations"의 약자로, 기업이 투자자와의 소통을 통해 투자 유치, 비전 전달, 신뢰 구축 등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설득하는 자리입니다. 피칭(Pitching)이란 단어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행위를 말합니다. IR 피칭은 공을 던지는 것처럼 투자자에게 기업의 가치를 던진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즉 빠르게 핵심적인 부분만 추려 강한 메시지로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이 특징이죠. 


스타트업의 투자단계

 스타트업의 경우 기업이 성장하는 단계에 따라 자금 조달을 위한 투자를 받습니다. 기업의 발전 단계와 투자 자금에 따라 구분되며 투자자들은 투자수익을 기대하며 기업의 성장을 돕습니다. 각 단계별로 투자 라운드라고 부르는데 보통 시드(Seed), 시리즈 A, B, C, D 등의 라운드를 거쳐 IPO(Initial Public Offering), 주식 상장 단계로 이어집니다. 


 시드라운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씨앗 단계입니다. 창업 전이나 창업 직후의 단계라 말 그대로 창업가의 열정과 가능성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금의 규모는 대체로 10억 원 이하입니다.


 시리즈 A로 가기 전 자금 조달을 위해 pre A 단계의 투자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10~15억 원대의 자금을 제품과 서비스의 론칭을 위해 투자받는 단계죠. 다음 시리즈 A단계는 본격적인 시장진출을 앞두고 시제품에 대한 검증이 끝난 단계입니다. 제가 참석한 IR피칭이 바로 이 pre A단계였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가의 경력과 시야가 곧 성장 가능성

 다양한 스타트업이 나와 준비한 사업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술이나 기업명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보기에 5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약간의 투자만 받으면 시장을 선도할 만한 기술을 가진 계획

- 기술이 너무 어려워서 투자자가 이해 못 하는 계획

- 아무리 봐도 대표가 사기 치는 것 같은 계획

- 수익모델이 없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계획

- 기술과 수익모델은 있는데 타깃 시장이 너무 좁은 계획 


 종합해 보자면 기술(아이디어), 수익모델, 타깃시장이 IR피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이나 수익 모델에 대한 것은 대표의 야심이나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플랫폼 기업 A의 대표는 개발자 출신이고 부동산 시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시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었어요. 그저 사람들이 모여 대화할 수 있고 서류에 사인할 수 있는 앱을 만든 것뿐입니다. 개발자 대표가 앱 개발은 할 수 있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경우입니다. 


 플랫폼 기업 B의 대표는 유통회사 출신이고 유통업계에서 아주 독특한 포지셔닝을 가진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유통업계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에 없는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앱은 개발자를 통해 만들었겠죠? IR피칭 도중 투자자가 앱을 다운로드하여 사용해 봤고, 가격이나 서비스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료 기술 기업 C는 대표가 공학도 출신이자 의료장비를 개발한 사람입니다. 병원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서 의료 비즈니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술에 대한 설명이 직관적이고 쉬워서 전공자가 아닌 저도 쉽게 이해했습니다. 거기에 누구에게 팔겠다는 타깃 고객군이 명확했고, 예상 소비자가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기술에 확장성이 있어 향후 의료 교육이나 3D프린터 기술과도 접목시킬 수 있다고 발표했어요. 제가 투자자라면 C기업에 투자하겠습니다.  


투자자가 듣고 싶은 말

 스타트업에서는 창업가의 경력, 즉 삶의 경험이 창업 아이템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했던 업계의 한계점이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죠. 그의 경험은 귀한 자산이고 업계 밖에 있던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문제의식입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에 매몰되면 시장을 제대로 보기 힘듭니다. 창업가에게는 좋은 아이템이지만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기술이나 제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안정성과 수익성이 있는지 검증하려 합니다. 예상되는 법률적 리스크, 시장의 확장 가능성, 이미 확보한 고객들과 잠재 고객들의 필요를 충족하는지, 명확한 경쟁력이 있는지를 봅니다. 결국 '누구에게 팔 거고, 얼마나 돈을 벌 수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답을 듣고 싶은 거죠. 그 답을 하는 사람을 신뢰할지 말지 결정하는 자리가 IR피칭일 것입니다. 


돈 주고 싶은 스타트업의 IR피칭

내가 투자자라면 누구에게 10억을 주고 싶을까?

  투자자의 시선으로 IR피칭 현장을 경험하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문, 설문조사, 고객사의 응답, 경쟁사와의 비교 분석 자료 등 확실한 근거가 한눈에 보이는 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열정만 넘치는 창업가의 뜬구름 잡는 계획에 투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두 번째는 문제나 업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할 때는 문제의 가장 핵심을 건드려야 해요. 임팩트가 적다, 영향력이 적다는 의미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얼마든지 다른 솔루션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마지막은 수익모델입니다. 우리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니 자신이 없는 창업가일수록 혓바닥이 길어지더군요.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빠져나가려 하지만 현장에 있던 투자자들의 질문이 날카로워서 금방 밑천이 드러났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참 냉혹합니다. 

그래서 더 짜릿한 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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