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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Sep 10. 2023

어떤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영화 <더 폴아웃> 리뷰

 심리적 상처는 낫지 않는다. 언제라도 트라우마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고스란히 과거의 고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몸의 상처는 그 위에 살이 덮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그저 상처투성이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 상담가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종종 아픈 과거가 떠오르고 삶에서 달아나고 싶을 때마다 생각한다.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 생의 책임이다.' 그래서 고통을 치유하기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럼에도 가끔은 상처받지 않았던 때가 그립다. 아마 다시는 그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믿거나, 티끌 없이 해맑게 웃지 못할 것 같다. 그 심경을 알기에 영화  [더 폴아웃, The Fallout]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경고: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영화 정보

 영화 [더 폴아웃]은 메건 파크 감독의 데뷔작으로 2021년에 개봉했다. 감독은 캐나다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동시에 [더 폴아웃]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증명했다. 영화는 학교 안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이후 무너진 삶을 재건하려는 십 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 배우 정보 : 그 댄서소녀가 여기에?

 주연인 제나 오르테가는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의 주연이다. [웬즈데이]에서 기괴한 매력을 보여주었던 연기와는 달리 [더 폴아웃]에서는 공포에 짓눌려 방황하는 십 대 소녀 '베이다'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베이다의 친구 중에는 동성애자 닉, 총격으로 동생을 잃은 퀸톤, 베이다와 함께 화장실에 숨은 미아가 등장한다. 미아 역은 가수 Sia의 Chandelier에서 광기 어린 춤과 연기를 보여줬던 댄서, 매디 지글러가 맡았다.

3. 영화 줄거리

 주인공 베이다는 수업을 듣는 중 갑자기 여동생의 문자를 받고 화장실로 나와 전화통화를 한다. 화장실 안에서 만난 미아와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리고 미아와 베이다는 황급히 화장실 칸으로 숨는다. 그 순간 피투성이인 퀸톤이 화장실로 도망쳐 들어오고 셋은 함께 공포에 떨며 숨죽인다.


 사건 후 베이다는 학교에 돌아가길 주저하고 가족들과 대화를 피한다. 대신 함께 화장실에 숨었던 미아와 가까워지지만, 술과 마약에 의존하면서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심리 상담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던 베이다는 아버지와 함께 소리를 지르고 아픔에 공감하면서 억눌렀던 공포와 공허를 직면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베이다. 그러나 또 다른 총기난사 소식이 팝업뉴스로 뜨고 되살아난 트라우마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영화는 끝난다.


4. 영화분석 : 트라우마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

 Fallout이란 '방사성 낙진, 죽음의 재'라는 뜻과 함께 '예기치 않은 결과 혹은 악영향'이란 뜻이다. 즉 영화는 예상치 못한 교내총기 난사라는 끔찍한 사건이 각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묘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굳이 잔혹한 총기난사를 보여주지 않고 총격 소리에 공포에 떠는 주인공들의 표정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섬세한 연출이었다.


 베이다, 미아, 닉, 퀸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처한다. 억압하는 베이다, 회피하는 미아, 분노하는 닉, 수용하는 퀸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충격적 사건에도 사람마다 회복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 분노하는 닉 : 총기난사를 방관하는 정부와 사회에 분노하면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시위에 나서는 등의 행동으로 심리적 고통을 다룬다. 자신의 분노와 무력감을 외부의 대상에게 투사하여 삶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 억압하는 베이다 : 악몽을 꾸면서도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 친구들과 멀어지는 대신 함께 화장실에 숨어서 고통받았던 미아, 퀸턴과 가까워진다. 정서적 트라우마를 외면하려 마약, 음주, 충동적인 성행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 회피하는 미아: 사건이 벌어진 학교에 가길 거부하고 좋아하는 춤을 추지도 않으면서 집에 숨어버린다. 불안이나 공포 같은 감정적 어려움을 다루지 못하고 회피하는 방어기제를 보여준다.


▷ 수용하는 퀸턴 : 수용은 자포자기가 아니다. 동생의 사망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생과의 추억을 소중히 하고, 여전히 동생과 함께 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비극적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영화는 총기 난사와 마약, 청소년 음주 같은 미국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 근원적인 공허, 고립, 무력감을 드러낸다. 비극적 죽음 앞에서 무력한 개인의 모습은 비단 미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도 이미 여러 번, 크고 작은 참사를 겪었고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포와 고통에서 자아를 지켜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우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아버지와 함께 소리를 지르고 마침내 자신의 공포, 공허, 무력감, 분노 등의 감정을 털어놓는 베이다.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희망을 느낀 순간. 핸드폰에 울리는 총기난사 속보에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영화는 가쁘게 내쉬는 베이다의 숨소리와 하얀 화면을 보여주며 끝난다. 어떤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어떤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Gtl-6RCOl84


[참고자료]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칼럼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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