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 독후감
누군가의 삶을 거쳐온 직업으로 설명할 때, 누드모델이란 직업은 꽤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삶이다. 중고서점에서 이슬아 작가의 책 '나는 울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된다'를 집어 들었을 때 꼭 그런 심경이었다. '누드모델로 살았던 사람은 어떤 엄마를 가졌을까.' 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 꼭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관음증처럼 느껴졌다.
이슬아 작가는 누드모델뿐만 아니라 기자와 연재노동자, 글쓰기 교사 등 글과 관련된 직업을 거쳐왔다. 경력 사항만 본다면 꽤나 프로페셔널 글쟁이다. 그러나 처음 글을 읽었을 때 아마추어 같다고 느꼈다. 엄마나 직업, 연애와 같은 평범한 소재로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었다. 늘 대가들의 문장을 인용하며 자신의 부족을 드러내는 작가의 겸손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묘한 흡입력이 있다. 작가 본인의 매력이 글에서 묻어나는 것 같다. 솔직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꾸밈이 없지만 초라하지 않다. 평범한 소재를 독특한 시선으로 본다. 미디어에 드러난 작가는 늘 신경 써서 입은 듯한 옷차림과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장신구를 걸친다. 글을 읽고 작가를 보면, 딸을 보고 그의 엄마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이 태어나기 아주 마땅한 작가를 본 듯했다.
글쓰기 교사로 삶을 엮어놓은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은 훈훈한 맛이 있었다. 시골 분교의 젊은 교사가 몇 없는 학생들을 데리고 느긋한 수업을 진행하는 듯한 풍경이 그려졌다. 때늦은 매미소리와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가 뒤섞인 교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숨죽이고 사각사각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고, 누군가 한숨을 쉬며 지우개로 벅벅 지워대면 책상이 덩달아 흔들릴 것이다. 기억 어딘가에 남아있던 내 어린 날의 풍경이다.
그는 교사일 때 좀 더 사려 깊게 배려하는 글을 쓴다. 학생들의 글 토막을 두고 다정한 답글을 달어주거나, 나이 많은 학생들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태도가 보였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된다'에서 보여준 작가는 좀 더 응석을 부리는 감성적인 소녀 같았다. 솔직하게 썼기에 스스로의 입장과 글을 쓰는 소재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듯했다. 여러 편의 에세이를 쓰고도 여전히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는 듯한 글을 쓰는 작가다.
나의 삶을 거쳐온 직업으로 설명한다면 파스타 가게의 단기 직원, 바텐더, 배달음식점 사장, 약국 직원, 바리스타, 기자라는 정체성을 가졌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간은 아무 직업도 없이 살았던 때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커피를 내리고 그날의 식사를 준비하고 햇빛이 내리쬐는 풀밭에 누워 책을 읽던 때다. 그리고 직업이 아닌 사랑이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아프게 헤어졌던 서사로 아마추어 작가가 되었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았다.
거쳐온 직업은 누군가의 삶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바꾸는 장치에 불과했다.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삶에서 작가가 눈여겨보는 것들이고, 글의 분위기는 작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다. 그 서사에 문학적 완성도가 더해지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한 권의 단정한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 또한 완성도에 기여하는 것이다.
혹자는 침체하는 출판시장에 쏟아지는 에세이 작품들을 보며 '이슬아 작가를 꿈꾸지만 사실은 일기장 수준'이라고 비아냥댄다. 일정부분 동의한다. 누구나 출판을 할 수 있으니 검증되지 않거나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도 시장에 나오는 듯하다. 때로 SNS며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삶까지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 피로하다.
그럼에도 서점에서 누군가의 에세이를 집어들 때는 콕 집어 그 작가의 삶을 엿보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엿보고 싶은 삶, 내면, 감성이라면 문학작품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을까. 2018년에 나온 '나는 울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된다'에 비해 2022년에 출간한 '부지런한 사랑'에서 엿본 이슬아 작가의 삶은 좀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 기꺼이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전히 타오르는 창작에 대한 열망은 좀 더 예리하게 다듬어진 듯하다. 그래서 이슬아 작가의 책을 덮고 나면 글을 쓰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