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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Dec 11. 2023

글쓰기의 고뇌

나를 위한 글쓰기와 타인을 위한 글쓰기

 종종 글쓰기를 토사물에 비유하곤 했다. 할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왈칵 쏟아내는 것이 글이라고. 덕분에 글을 쓰고 나면 늘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게워내고 나면 뱃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처럼, 텁텁하게 올라온 신물이야 몇 번 입을 헹구면 그만이니 말이다. 


 호기롭게 글쓰기로 돈을 벌겠다고 나섰을 때 깨달아야 했다. 그런 토사물 같은 글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돈이 되는 글쓰기는 나를 위한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무지(無知)의 대가로 나는 완전히 붕괴했다.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글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교묘하게 메시지를 주입하고 은근슬쩍 읽는 사람의 정신을 홀린다. 결국 글쓰기는 아주 노련한 기술이어야 하는 것이다. 노련함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얻는 전리품이다. 그러니 업계에 오래 머물렀다 해도 노련함을 쉽게 얻지는 못한다. 안전지대에서 세월의 벗 삼아 글쓰기를 했다가는 고여서 쉬어버리기 십상이다. 


 내로라하는 대학의 교수님이 퇴직 후에는 아무도 자신의 책을 사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매년 신학기마다 교과서 삼아 책을 사주던 학생 고객님들이 없어지니 냉혹한 시장의 규칙에서 완전히 버림받고 만 것이다. 이름값에 걸린 자존심이 고고해서 절필을 하고만 것인지, 아니면 은퇴 후에 또 다른 즐거움이라도 찾은 것인지 그 교수님은 더 이상 책은 내지 않는 모양이다.


 붕괴 崩壞 라는 단어의 한자를 뜯어본다. 무너질 붕崩에 무너질 괴壞. 허물어지고 무너진 것을 강조하려 같은 뜻의 단어를 두 개나 붙여 놓았다. 崩에는 뫼 산山 자가 부수로 있다. 壞에는 흙 토土 자가 부수로 있다. 산이 무너지고 흙이 무너지면 지진이라도 나서 땅이 갈라지기라도 한 모양일까. 무너질 괴壞에는 '아파서 앓다'는 뜻도 있으니 금방 무너진 흙더미 아래 꼴딱 꼴딱 숨이 넘어가는 사람이 떠오른다. 요즘 내 심경이 딱 그렇다.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어쨌거나 무너진 잔해에서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의 문제다. 


 어떤 이는 자존감은 높이고 자존심을 죽이라고 충고를 하던데, 나는 자존감이고 뭐고 어금니를 꽉 깨무는 자존심으로 살았다. 이까짓 일에 내가 무너질 수는 없다며 버티고 버텨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다시 바닥을 짚으며 살아왔다. 자존감 없어도 먹고사는 일에는 아무 문제없었다. 자존심은 내가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고 다시 도전하게 했으니 오히려 자존심이 내 친구였던 셈이다. 


 완전히 붕괴한 나는 다시 일어서려 꿈틀대고 있다. 글쓰기를 삶의 무기로 삼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내 무기를 아주 날카롭게 벼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버릴 것들이 많고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내 글은 아주 아주 솔직하므로 앞으로는 완전히 다르게 쓰일 것이다. 


 못내 아쉬워 브런치만은 토사물 같은 글쓰기의 공간으로 남겨놓고 싶다. 오롯이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면서 무너졌을 때마다 잠시 쉬어 가는 곳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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