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함께 여행을 가는 나와 두 친구는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영화 <세 얼간이>에 버금가는 다사다난한 고생을 한다. 예전에 경주의 워터파크에 갔을 때는 한 명의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기차에 낙오되었던 적도 있다.
친구는 기차에서 내리면서 핸드폰을 놓고 왔다며 나에게 가방을 맡겨놓고 다시 기차 칸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그 순간에 스르르 닫히는 문과 출발하는 기차가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1박 2일에서 봤던가? 정작 핸드폰은 나한테 맡긴 가방 속에 있었고 친구는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기차를 타고 가버렸다.
친구를 찾겠다고 역무원에게 달려가 27살의 내 친구는 파란 옷에긴 머리를가졌다며... 마치 잃어버린 딸을 찾듯이 도움을 요청했다. 그분들이 도와준 덕에 기차 안에서 친구를 찾던 역무원에게 발견되어, 친구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적힌 종이쪽지 하나를 표 대신 받아 들고 경주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기차는 친구를 태워주려고 2분을 더 정차해 주었고 기차 칸에 사람이라곤 친구 한명뿐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건들은 만날 때마다 끊이질 않는다. 서울에 경복궁 구경을 갔을 때는 길을 잘 못 들어서 헤매다가 겨우 경복궁에 입장했는데 폐장시간을 몰라서 다 보지도 못하고 나온 적도 있다. 어느 때는 날씨가 너무 덥고, 어느 때는 한 명이 아프고, 어느 때는 내 핸드폰이 고장 나는 등 단 한 번이라도 편하게 놀다 온 적이 없다.
지난 주말에 몇 개월 만에 만나서 간 부산여행은 비바람을 뚫고 다녀왔다. 이번엔 맑은 날씨가 허락되지 않아서 자욱한 해무 속에서 쫄딱 젖은 생쥐꼴로 여행을 한 것이다. 흰여울 마을에 갔더니 자욱한 바다 안갯속에 펼쳐진 산책길은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고, 하늘이 너무 흐려서 하늘과 바다가 푸른 회색빛으로 뒤섞여 있었다. 예쁜 사진을 찍겠다며 원피스도 입고 갔는데 사진엔 웬 삶의 풍파에 지친 사연 많은 여인네가 하나 있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풍파라는 단어는 바람과 파도라는 뜻이지 참... 그날 바람과 파도가 굉장했으니 풍파에 지쳤다는 표현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매번 우리가 이렇게 고생스러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나와 친구들 모두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해맑기 때문인 것 같다. 기차에서 낙오된 친구와는 예능에서나 보던 일이라며 신나게 웃어 댔고, 그날 아침에 타로카드 어플로 본 오늘의 운세가 기똥차게 잘 맞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그날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점괘를 뽑았다. 다른 친구는 오늘은 야외활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괘를, 낙오된 친구는 모든 시끄러운 일이 나를 보고 있다는 점괘를 뽑았다. 단순한 타로카드 어플이 하필 그날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너무 더운 날씨에 지쳤을 때는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주문한 커피가 너무 맛있다며 즐거워했고, 경복궁 벤치에 앉아 여유를 부리다가 폐장 안내방송을 들었을 때는 그래도 오랜만에 얘기 많이 해서 좋았다며 웃어버렸다. 대책 없는 낙천성과 유치 찬란한 유머 코드가 고생스러운 여행을 추억으로 기억되게 한 것이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다 간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도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의외의 곳에서 즐거움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여행에서 식사메뉴를 고를 때도 그랬다. 처음엔 택시를 타고 기사님이 소개해주신 로컬 맛집이라는 연탄불 석쇠불고기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주눅 들어서 자갈치 시장의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다. 그렇지만 막상 생선구이 집에도 끌리지 않아서 그럼 부평동 족발골목에서 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가, 가는 길에 숯불 구이 냄새에 홀려 결국 숯불갈비를 먹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숯불갈비지만 그날 저녁 메뉴는 모두에게 로컬 맛집이라고 인정했다. 생갈비에 숯불 향기가 베여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계획대로 가기보다 자기의 감과 코를 믿는 게 맛집을 찾은 비법이다. 다음날은 얼큰한 칼국수나 먹을까 했다가 가는 길에 낙지볶음 간판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끌려서 들어갔더니 유명한 낙곱새 가게였다.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왔다.
이번 부산 여행도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고 늘 그렇듯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 글이 남았으니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다음엔 날씨가 아주 맑은 날 송도 케이블카를 타자고 약속했다. 약간의 아쉬움을 두고 떠나는 여행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