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by 구름조각

예전에 약국에서 일했을 때 경험한 일이다.


그 약국은 동네에 작은 약국이 아니고 종합병원 앞에 위치한, 하루에 처방전을 300~400건씩 처리하는 약국이었다. 병원에 암센터도 있다 보니 주로 암, 알츠하이머, 간질 등 중증의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많이 왔다. 그러니 조제실에서 보조로 일하는 나도 마약류, 향정신성 의약품, 항암제 등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곳에 오는 환자들은 다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매일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몇 명 있지만 오늘은 유독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환자는 간암 말기의 환자였다.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어 환자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고 몸이 앙상하게 마른 상태였다. 그날 찾아온 이유는 약을 좀 빌려달라는 곤란한 부탁을 하기 위함이었다.


설명을 좀 하자면 암환자들은 보통의 진통제가 아니라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데, 그런 마약류의 진통제는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의사가 처방해준 만큼만 받을 수 있다. 그 양은 정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최소량 정도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환자는 이미 진통제를 다 먹고, 다음 처방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약국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미리 받아가고 다음 처방에서 받은 진통제로 돌려주면 안 되겠냐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당연히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눈 앞에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약도 아니고 진통제를 빌려 달라는데 모질고 차갑게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누구도 냉정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도와주겠다는 말도 못 하니 어색하게 침묵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환자도 자신의 부탁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다는 걸 알지만 진통제 없이 통증을 견디는 게 힘들어 선뜻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환자는 말없이 계속 서 있고, 일하는 직원과 약사들은 다른 일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이도 저도 못하는 어색한 상황이 한참 지속되었다. 이윽고 그 환자는 조용히 가버렸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이 편할 리도 없었다. 다정한 말이라도 한 마디 해줬어야 한다고 후회하면서도, 그런 고통을 견디는 사람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고통을 안다는 말도 거짓말이고, 힘든데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은 너무 냉정하고,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가라는 말은 왠지 공허하다. 어떤 사람은 기가 막힌 말솜씨로 사람을 위로하던데, 나에게 그런 재주가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할 따름이다.


초등학생 때 학교 토론회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안락사를 하는 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거라는 주장을 펼쳤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죽음이 뭔지 모르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던 같다. 내가 경솔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안락사라는 선택을 하기까지 그 사람이 받았던 고통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선택은 아마도 죽음이 아니라 사는 동안 느낄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옛말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지만 개똥밭에 구르는 그 삶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삶인지 모르겠다. 이 말도 지금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옛날 사람들을 위한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 너무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 그 삶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통제를 받기 위해 서 있던 그 간암 환자에게 고통을 견디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 내가 있는 곳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음습한 날씨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죽음이란 단어는 그날 진통제를 기다리던 환자의 까만 얼굴이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고, 그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은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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