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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다시인 Jul 07. 2021

뛰는 것, 즐기는 것과 목표 사이

[감성에세이] 홍제천 달리기

오늘은 홍제천을 걷는 대신에 달리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발목 인대가 늘어나면서 무리하게 뛰는 것을 자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100미터 정도 뛰어갈 때쯤 숨이 가쁘며,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약간 어지러운 듯도 했습니다. 200미터 정도 뛸 때 그만 멈춰서 쉬고 싶었습니다. 이때 어느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일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인내심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또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조금 힘들다고 뛰는 것을 멈추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표했던 곳까지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전라도에서 달리기를 ‘담박질’이라고 합니다. 잘 뛰는 사람을 “아이고 담박질 잘하네”라고 하죠. 저도 종종 담박질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같은 학년에서는 저보다 잘 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건, 제가 평소에도 집 앞을 잘 뛰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다 반대편으로 석양이 질 때, 뛰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땀이 내 몸을 흠뻑 적셨고,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될 때마다 뛰었습니다. 턱에 숨이 찰 때까지 뛰면 근심과 걱정, 슬픔도 사라졌습니다. 거칠게 들리는 제 숨소리와 마구잡이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만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오늘은 홍제천을 뛰다가 걷다가 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달리기는 제 오른쪽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아프게 했습니다. 학창 시절, 오래 달리기 체력시험을 볼 때 운동장 한두 바퀴를 남기고 느꼈던 그런 통증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집 앞을 뛰었던 시절이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지 않았을까. 어릴 적엔 뛰는 게 즐거웠습니다. 숨이 가쁘고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 뛰었습니다. 즐거웠으니까. 성인이 돼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로 뛰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목표를 향해 뛰지만 즐겁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만큼 달렸다’라는 위안을 삼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오늘은 이만큼 달렸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 일했으면 됐다. 이 정도 공부했으면 됐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삶을 즐기는 게 아니라 ‘이 정도’라는 한계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일을 많이 한다고 돈을 더 많이 주는 것은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 친절을 베푼다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회에 나와서 세상을 알게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뛰어다니는 열정보다는 옆 사람이 걷는 보폭에 맞춰서 걷게 되고, 가야 할 길이 무한하게 긴 곳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다시, 끝을 생각하지 않고 뛰는 게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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