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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다시인 Jul 08. 2021

2009년, 호주 브리즈번 워홀러의 공장 일자리 찾기

[감성에세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일자리가 부족해진 호주 2009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가 올 때면, 가끔 그날이 생각이 납니다. 저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습니다. 왕복항공권, 5~6개월 생활비와 학원비만을 들고 1년간의 해외 생활을 계획했습니다. 3개월 영어 학원을 다니고, 일자리를 구해서 생활비와 여행비를 벌기로 한 것이죠. 근데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끝난 2009년 호주는 일자리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현지인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끔 일자리를 못 구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워홀러(워킹홀리데인)들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보통 워홀러들은 2~3개월의 생활비만 가지고 호주에 옵니다. 그나마 저는 그것보다 나은 생활비를 가지고 와서 얼마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력서는 수십 곳에 넣었지만, 연락이 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호주 온 지 6개월도 못 돼서 한국으로 돌아갈 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브리즈번 시티(시내) 근처에 있는 지역인 스프링힐 셰어하우스에서 살았습니다. 2층 집이었습니다. 그때 같이 살았던 남자 셋도 저처럼 일자리를 못 구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한 친구가 자기의 지인이 공장에 다니는데 돈을 많이 번다면서 공장에 이력서를 넣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잡고 브리즈번 공장지대로 향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낯선 환경, 영어도 썩 잘하지 못해서 현지인의 영어 발음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한국 남자 넷은 공장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사무실에 찾아가 이력서를 돌렸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우리가 건넨 이력서는 다 받긴 했습니다. 지금 채용할 필요가 없다고 친절히 설명하기도 했죠. 우리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이력서를 내기 위해 이 공장 저 공장을 다녔습니다. 성과는 없었습니다. 야속하게도 그날, 맑은 날씨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렸습니다. 우산은 가지고 있었지만 공장지대를 다니면서 흙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죠. 몇은 운동화가 빗물에 젖기도 했습니다.      

호주 브리즈번 시티 _ 플리커


1~2개월 안에 일자리를 못 찾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러 간 공장에는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비는 내리고, 남자 넷은 멍하니 길을 걸었습니다. 다른 친구들 얼굴이 울상이 됐을 때 저는 그 상황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은근 재미를 느꼈습니다. 낯선 해외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러 공장을 다니고 있는 경험이 제게 새로웠습니다. 현재 이 순간은 즐거웠죠. 이렇게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 따뜻한 호주산 커피를 한잔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습니다. 한 친구는 은근히 즐기고 있는 저를 보면서 ‘멘털 갑’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정신력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저 때문인지, 공장에 이력서를 내는 일은 매번 허탕을 쳤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서 각자 따뜻한 저녁 한 끼를 하고 그날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날이 지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리 넷은 모두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저는 한인식당에서 서빙을 했으며, 한 친구는 중국식당 주방에서 일을 했습니다. 또 한 친구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으며, 우리가 다녔던 공장은 아니지만 한 친구는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동안 어떤 친구는 여러 곳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저처럼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몇과는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만나기도 했죠. 그들은 대기업에 취직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설거지, 서빙을 하거나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던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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