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종교의 가치
제가 태어난 시골 마을에는 원불교와 교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근처에 위치한 원불교와 교회는 초등학생 걸음으로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 처음으로 큰누나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갔습니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느라 자주 간 편은 아니었지만, 여름 성경학교와 크리스마스에는 필히 참석을 했습니다. 어느 날, 반 친구들이 원불교에 가면 자장면도 사주고 축구도 할 수 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자장면’이라는 소리가 제 귀를 잡아당겼습니다. 저는 그 이후 토요일마다 하교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원불교에 갔습니다. 원불교에서는 비디오 영화도 보여주고, 간식도 줬습니다. 축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에는 다른 친구들과 누나를 따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원불교를 생각하면, 막내 누나가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3학년(?) 토요일 오후, 저는 하교를 하고 친구들과 원불교에 갔습니다. 진주알만큼 큰 우박이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그때 원불교에서 막내 누나를 봤습니다. 누나는 친구들과 손으로 껴안을 수도 없을 정도로 큰 냄비에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 라면은 원불교에 오는 학생들을 위한 점심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누나가 왜 여기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원불교에서 막내 누나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나와 저는 서로 눈인사를 했지만 둘 다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때 제 생각에는 누나도 ‘자장면’이라는 단어를 듣고 원불교를 오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다음 날 일요일에 막내 누나와 저는 교회에 가서 달란트를 받고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22살에 군대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주말마다 교회, 불교, 천주교를 선택해 갈 수 있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같은 내무반을 사용하고 있는 훈련병들은 교회, 불교, 천주교의 장단점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교회는 잠은 못 자지만 간식이 맛있으며, 불교는 방석이 푹신해서 잠자기가 좋고, 천주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훈련소 5주간 4주는 교회에 갔습니다. 가깝기도 했으며, 간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2년간의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1주는 불교에 갔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목탁 소리와 푹신한 방석은 잠을 자기에 최적이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했죠. 자는 동안 저는 제 삶을 뒤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왈가불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종교는 그 자체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이비 종교는 예외입니다. 단지, 인간이 신을 믿는 것은 나약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힘들고 지친 시기에 교회 예배를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느꼈습니다. 또 교회에 가지 않더라도,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는 아직도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은 불교적인 관점인 듯합니다. 정확하게 제 머릿속에 성경과 불교 교리가 정리돼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교회와 원불교 예배를 통해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제 삶을 스스로 반성하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종교가 말하는 진리는 똑같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교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보통 인간이 모두 실천하기 힘든 정답을 알려줍니다. 그 정답은 아주 단순하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신을 믿습니다. 기도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신이 있냐, 없냐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나약하게 태어났으며, 살아야 하는 반강제적인 의무를 지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큰 축복을 받았으며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때론, 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강인한 정신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