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다시인 Jul 20. 2021

고3 담임이 매타작 후 줬던 달콤한 믹스커피

[감성에세이] 믹스커피의 추억

한국 인문계 고등학생은 2학년 겨울방학부터 ‘고3 수험생’이 됩니다. 2학년 겨울방학 보충수업부터 3학년 반 배정이 시작되고 담임 선생님도 정해집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그랬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이 없었으며, 겨울방학 보충수업은 1학년 때와는 달리 의무적으로 2학년 전부가 참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보충수업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방학 수업은 결석 처리가 안 되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무단결석이었죠.      


저는 고등학교가 무척 싫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학교를 가는 게 즐거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공부하는 게 즐겁지 않았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앉아 있는 것은 제게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늘 잠이 부족해 수업시간에 졸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했던 일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체육시간에 제대로 운동을 못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실내체육관에서 체조 정도만 간단히 하고 축구, 농구 등 어떤 것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학교는 공부에 집중하라며 고3 체육시간을 없애버렸죠.       


제게 고등학교 시절은 방황의 시기였습니다. 공부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았죠. 학교 정규수업은 빼먹지 않았지만, 늘 다른 생각이 제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를 하기 위해 기회만 엿봤습니다. 1학년 때부터 방학 보충수업은 빼먹기 일쑤였죠. 가끔 제게 공부 말고도 즐길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해봤습니다. 그 시절, 제가 공부 이외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운동을 했으면 공부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각설하고, 2학년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무단결석했던 제가 갔던 곳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했던 제가 교과서만 읽다가 바보가 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가 지겨워지면서 책도 등한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서관에서 무작정 아무 책이나 펼쳐 봤습니다. 시집, 소설책 등 손에 잡힌 대로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많아졌죠. 제가 살아가야 하는 앞날이 걱정이 됐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방학 보충수업을 빼먹고 지내고 있을 때,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너희 담임이 너 학교 오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너희 집에도 찾아갔는데 네가 없었다고 하더라.” 저는 얼굴을 몇 번 보지 않았지만, 3학년 담임 선생님이 고마웠습니다. 저를 찾을 줄 알았지만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보충수업에 한 번쯤 나가기로 결정했죠. 학교에서 보자고 친구에게 말하며 다음 날에 등교를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저를 보자마자 복도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밀걸레 대가 장군의 칼처럼 들려 있었죠. 복도에 엎드려 밀걸레 대로 엉덩이를 맞았습니다. 당연히 매우 아팠습니다. 매질 소리는 1반부터 10반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3학년은 때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았던 사람이 저인 것 같습니다.) 끝내, 제 엉덩이에 키스를 마구 퍼부었던 밀걸레 대는 반토막이 났죠. 담임 선생님의 매질도 거기에서 그쳤습니다.      


엉덩이에 피멍이   교실에 들어간 저는 의자에 반쯤 걸터앉았습니다. 엉덩이가 아파서 제대로 앉을  없었죠. 그때 담임 선생님이 믹스커피를  종이컵을 제게 건네줬습니다. 미안한  종이컵을  앞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종이컵에는 제대로 섞지 않는 믹스커피 알갱이면에 붙어있었습니다.  모습을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반에 친구들이 많아서 미소만을 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푸하하웃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매타작이 있었던 후부터 저는 보충수업에 나갔습니다.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수학능력시험을 위한 공부도 시작했죠. 이미 늦었지만 말입니다. 고3 첫 모의고사 시험은 엉망이었습니다. 전체 중 중하 정도 점수를 받았습니다. 6개월 후에는 모의고사 점수 100점이 오르기는 했습니다. 역시나 1, 2학년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한 탓에 기본기가 많이 떨어져 수능에서 만족할만한 점수는 얻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믹스커피를 마실 때마다 매타작 후 담임 선생님이 제게 줬던 믹스커피가 생각이 납니다. 엉덩이가 아파 눈물이 났지만 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추억이 깃든 커피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쌀 원정대, ‘책거리’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