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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다시인 Jul 27. 2021

시 독학 1년 만에 시인 등단 후 깨달은 것

[감성에세이] ‘배움’을 위한 ‘배움’

저는 시(詩)를 독학한 지 1년 만에 시인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시인이 되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집을 출판하거나, 문학지에서 개최하는 문학상 시 부문에서 수상을 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엘리트 등단 코스인 신춘문예(매해 초 신문사에서 주로 신인 작가를 발굴할 목적으로 벌이는 문예 경연 대회)에서 시 부문 당선자로 뽑히면 됩니다.      


10대 시절부터 저는 막연히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살이 되는 해, 저는 본격적으로 시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생각나는 대로 시 같지 않는 낙서를 했다면,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 독학을 했습니다. 시작법 같은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매일 수십 편씩 유명 시를 읽으며 공부도 했습니다. (남들이 PC방에서 게임을 할 때, 저는 시를 쓰고 있었죠.)        


시를 공부한 지 1년이 되는 해에 저는 작은 문학지에서 개최한 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을 했습니다. 당선됐다는 소식에 저도 놀랐습니다. 아무리 작은 문학지라도 수많은 시인 지망생들이 지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저는 시를 막 쓰기 시작한 걸음마 수준이었죠. 한동안 저는 정식으로 해당 문학지에 원고를 기고했습니다. 그런데 더 욕심이 났습니다. 더 유명한 문학지나 신춘문예 같은 곳에서 등단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열심히 시 공부를 하면서 신춘문예와 유명 문학지 등단 문을 두드렸습니다. 매번 낙방이었죠. 10곳 이상 지원을 했지만 한 곳에서도 본선에 들지 못했습니다. 시를 쓴 지 2년째가 되는 해, 유명 문학지에 본선까지 들었습니다. 기뻤죠. 그리고 저는 한동안 제 시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시를 공부하는 대신에 경험을 많이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며, 당분간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제가 더 성숙해지면 다시 시를 쓰기로 한 것입니다.      


절필을 선언했지만 가끔 시를 썼습니다. 군대에 가기 전, 대학교 내에서 열린 문학상 2곳에서 시 부문 당선을 했습니다. 상금이 욕심이 나 서둘러 썼던 시가 당선이 된 것입니다. 군대에 가서는 병영문학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했습니다. 포상휴가를 받기 위해 예전에 썼던 습작시를 내서 상을 받았죠. 그리고 이따금씩 커피를 마시다가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둡니다. (아직은 시를 위해 펜을 들지 못하고 있죠.)      

대학 졸업 후 저는 제가 고등학생 때 썼던 시(?)를 읽었습니다. 그냥 낙서였죠. 찬찬히 그 글들을 읽어보면서 초등학생 수준일 정도로 못 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뭐라고 된 것인 마냥 글을 쓰고, 혼자 감동했는데, 글들은 낙서보다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글을 쓸 때를 생각해보면, 이불 킥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시를 통해 저는 제 인생에서 한 가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바로 ‘배움’입니다. 천재는 배우지 않더라도 모차르트처럼 피아노를 치겠지만 일반인은 아닙니다. 어떤 것을 시작하기 전에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움’을 위한 ‘배움’이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전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에 대해 습득해야 합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축구공을 찬다고 누구나 축구를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발의 어떤 부위로 축구공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생이 된 조카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에 이런 말을 합니다. “공부를 하기 전에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라.” 저는 학창 시절, 무작정 문제만 풀었습니다. 비효율적인 공부 방법이었죠.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고, 답을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하는 법도 따로 있죠. 공부하는 법을 모르고 공부하는 것과, 답을 찾는 과정을 모르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은 제가 시 쓰는 법을 모르고 시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나 자녀들에게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잘 살라고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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