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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다시인 Aug 02. 2021

창업 초기,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갈뻔한 사연

[감성 에세이] 준비도 없이 유명해진다는 것

한동안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예능프로그램 소재가 ‘짝짓기(?)’였습니다. 연애와 결혼이 힘든 시기인 요즘, 미혼 남녀가 출연해 마음에 드는 이성을 선택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인기였죠. 창업 초기, 저한테도 ‘짝짓기 프로그램’ 중 한 곳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인이 저를 그 프로그램에 추천했죠. 지인은 TV에 출연해 저를 통해서 회사를 알리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도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그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죠.) 제가 알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 중에서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업이 잘 풀리는 이들을 보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우선, 저는 짝짓기 프로그램의 작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만난 작가는 제게 이런저런 사적인 내용을 물었습니다. 학력, 나이 등 기본 인적사항뿐만 아니라 재산, 사업 규모, 매출 등 경제적인 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작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사회에 발을 내디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던 탓에 개인적인 재산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저는 이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대답을 하면서 부끄러운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초라했죠. 첫 인터뷰 이후 작가는 출연 가능 의사와 일정을 물었지만 결국 저는 출연 제의를 고사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술자리에서 대학교 동기 중 한 명에 대한 이야기가 제 귀를 잡아당겼습니다. 그 동기가 짝짓기 프로그램 중 한 곳에 출연했는데, 과장해서 자신의 직업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신입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그가 회사 허락 없이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송에 출연했죠. 거짓은 아니지만 과장된 표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갈 수 있는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에게 그는 대단한 존재로 인식이 됐을 것입니다. 아마도 작가가 프로그램의 재미 요소를 더하기 위해 그를 소개할 때 과장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사진. 픽사베이


만약에 제가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을 했다면, 저도 과장되게 소개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쯤으로 TV에 나왔겠죠. 이를 본 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술자리에서 제가 술값을 내야 하는 횟수도 늘어났겠죠. 또 지인들의 술자리에서 제 방송 이야기가 가끔 안주거리로 나왔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출연을 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평생 제 이름 앞에 ‘짝짓기 프로그램’ 타이틀명이 먼저 나올 뻔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 출연으로 제가 유명해져서 사업이 술술 풀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회라는 것이 무명인보다는 유명인에게 더 많은 게 사회이기 때문이죠.      


2021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20대 초반의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과장되게 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어린 나이에 가졌기 때문에, ‘최연소’라는 타이틀로 소개됐죠. 아마도 그 방송을 부모와 함께 봤던 20대 청년들은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을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녀는 청년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으로 비춰줬을 것입니다. 옛말에 ‘소년급제’, ‘소년등과’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것은 질투를 부르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남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면, 유명해지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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