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통제와 비통제 9.
세상은 늘 수군거린다. 그러나 그 수군거림을 네 귀에 큰 울림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다.
-세네카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무명가수들에게 다시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곳. 참가자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다. 이번 시즌이 얼마전 시작되었는데,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든 무대가 있었다.
무대에 선 이는 22호 가수.
그는 노래를 시작하기 전 담담히 말했다.
“한때 제 노래가 너무 유명해져서, 저는 드라마 OST 가수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시선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음악이 흘러나왔다.
첫 전주가 시작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이 멜로디…”
순식간에 90년대의 어느 저녁으로 돌아간 듯했다.
TV 앞에 모여 앉아 드라마를 보던 그 시절의 공기, 그 시간의 냄새까지 되살아났다.
심사위원들 역시 같은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눈을 가만히 감았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분명 “추억”이라는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첫 소절도 시작되기 전이지만, 노래의 제목은 이제 모두가 알았다.
방영당시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질투의 주제가.
한 세대를 흔들었던 그 곡이, 30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흐르고 있었다.
22호 가수는 단순히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터뜨렸다.
쌓여온 세월의 아픔과 한숨까지 함께 쏟아내듯, 무대를 흔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를 “OST 가수”라 부를 수 없었다.
그는 단연코 ‘가수’였다.
이 무대를 보며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나귀와 부자와 아들’이라는 이솝우화이다.
어느 여름날, 노인과 아들이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장터로 향하고 있었다.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우리가 이렇게 걸어가야 하나요? 나귀를 타면 더 편할 텐데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 아들을 태웠다.
그러자 길가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세상에, 젊은 놈이 편히 앉아가고 늙은 아버지를 걷게 하다니. 버릇없는 녀석이군.”
아들은 얼굴이 붉어졌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께서 타세요.”
이번엔 아버지가 나귀에 올랐다.
그러자 또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했다.
“저 노인네 참 뻔뻔하군. 자기는 편하게 타고 어린 아들은 걷게 하다니.”
노인은 얼른 아들을 불렀다.
“얘야, 같이 타자꾸나. 그래야 말이 없겠지.”
부자가 함께 나귀를 타고 가자, 이번엔 또 다른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불쌍한 나귀 좀 봐라. 저 무거운 둘을 다 태우다니 곧 쓰러지겠다.”
아버지와 아들은 난감해 서로를 바라봤다.
아들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우리가 나귀를 직접 메고 가야 하나요?”
결국 밧줄로 나귀 다리를 묶어 어깨에 메고 갔다.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허허, 나귀가 사람을 타고 가는 꼴이라니!”
그 순간 밧줄이 끊어지고, 나귀는 강물로 빠져 떠내려가 버렸다.
부자는 나귀도 잃고, 자신들도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우화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치고,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자.
정말 사람들이 대놓고 그렇게 비난을 퍼부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길가에서 한두 마디 흘린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그 작은 목소리를 키우고, 상상하고,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22호 가수 역시 그랬을지 모른다.
OST 가수라는 낙인이 실제로 그의 커리어를 막았을까?
아니면 몇 사람의 말이 와전되고, 그가 마음속에서 그 소리를 키운 것은 아니었을까?
진짜 발목을 잡은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그 시선을 과대해석한 자기 자신이었을 수 있다.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말했다.
“타인의 시선은 외부에 있는 것일 뿐, 그것을 해석해 고통으로 만드는 건 오직 나 자신이다.”
세상은 늘 수군거린다.
그러나 그 수군거림을 울림으로 키울지,
그냥 흘려보낼지는 나의 선택이다.
22호 가수는 결국 다시 무대에 섰다.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낙인이 아니라, 노래 그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같은 말을 건네고 싶다.
타인의 시선에 눌려 자신을 가두지 말라.
그 감옥은 당신이 만든 것이며, 열쇠도 당신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