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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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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Jan 14. 2021

베란다에서


해질녘의 한강


1. 우리 집 베란다는 경치가 정말 좋다.


  하늘도 잘 보이고 한강도 잘 보이는데 타이밍만 잘 맞추면 정말 예쁜 색깔의 하늘을 볼 수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에는 더욱 그렇다. 원래 비 갠 직후의 하늘이 제일 예쁜 법이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는 한강이 더 잘 보였다. 동생이 쓰던 방이 전망이 정말 좋았다. 올림픽대교가 한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집에 살 때는 하늘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하늘을 볼 필요가 없을만큼 강이 잘 보였으니까.


  반면 지금 살고있는 집은 강이 보이긴 하는데 강 앞에 있는 나무와 고가도로 때문에 소위 말하는 "한강 뷰"가 전에 살던 집보다 안 좋다. 그래서 이사를 온 뒤로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보고 하늘 사진을 찍게 됐는데 오늘도 해질녘 하늘 사진을 찍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를 덜어내면 그만큼 뭔가 새로운  얻게 된다는 . 따지고 보면 한강 뷰를 손해본 만큼 예쁜 하늘을 더 많이 볼  있게  것이니 말이다. 일종의 질량 보존 법칙이랄까. 문과이지만 화학I까지는 배웠다.


해 뜰 무렵의 한강


2. 이 사진은 내가 고3 시절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밤을 샌 뒤에 우원재의 시차를 에어팟으로 크게 들으며 여름 새벽 5시쯤에 찍은 사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너무나도 깨끗하고 좋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내가 왜 밤을 샜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든 건 몽땅 잊어버리고 예쁜 것,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인간의 본성인가보다.


  우리 인생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돌아보면 진짜로 똑같은 날은  하루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기억이 미화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멍하니 한강을 바라보다가 해질녘 하늘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에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급하게 써내려간 글이다. 짧은 글이지만 다 쓴 후에 읽어보니 나중에 부업으로 에세이 작가를 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부업으로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사실은 이런 글이 내 적성에 더 잘 맞는 것이었을지도. <언어의 온도>라는 산문집을 참 좋아하는데 죽기 전에 그런 예쁜 책을 한 권이라도 써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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