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온갖 이유로 불편함을 느낀다.
불편함의 원인은 친구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특정한 사회적 쟁점이 될 수도 있다. 즉 불편함을 느낄 만한 대상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격에 관해서는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의식적인 불편함까지 합하면 1일 3불편은 거뜬히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이 분명히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불편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속으로 담아두는게 맞다고 생각해 왔고 그것을 줄곧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불편함을 다 표현하고 살면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불편해도 참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한 친구가 나였으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거나 느꼈더라도 속으로만 약간 불편해하고 말았을 일에 대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나에게 고스란히 드러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했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 친구의 평소 모습을 토대로 판단을 내려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었고, 나에게는 고를 만한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답답한 마음에 제3자에게 물어봐도 그게 그렇게까지 불편해할 일이냐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쯤 되니 나도 평소에 그 친구 때문에 굉장히 여러 번 불편함을 느꼈었는데 본인의 행동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사소한 문제로 시끄러워지기 싫어서 말하지 않은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을 당시에는 약간 짜증이 났던 것과 더불어 그 친구가 마냥 어려보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을 하지 않으니 나의 불편함은 아무도 몰라주지만 그 친구는 티를 내고 다니니 모두가 알아준다. 그 순간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불편한 감정을 털어내는 동시에 그 감정을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성숙해보이지 않으면 뭐 어떤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이 편하다면 그만인 건데.
결국 나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과 감정적 짐을 쌓아두는 것 중 무엇을 더 불편해하느냐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전자가 더 불편했던 것이고 그 친구는 후자가 더 불편했던 것이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는데 이것도 하나의 선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득인지는 인생을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