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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Jan 28. 2021

음료수로 보는 연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뭘까?


  내가 스스로의 경험과 지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추측해 보면 연애에 있어서 좋아함의 정도는 1부터 4까지의 스케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1.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2. 그 사람과 사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3. 그 사람이 궁금하고 왜인지 모를 조바심이 드는 것

4. 그 사람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


1.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인간적인 호감이다. 그 사람의 외모나 인품 등등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과 낯간지러운 대화를 하거나 스킨십을 하는 상상을 하면 약간 꺼려진다. 음료수에 비유하자면 녹즙을 마시는 기분인 것이다. 몸에 좋은 건 아는데 맛이 없다. 이 사람과 만나면 나쁘지 않을거란  알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2. 그 사람과 사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이성적인 호감이다. 그 사람과 연애를 하는 상상을 해도 꺼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 상태에서 연애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맹물을 마시는 기분과도 같다. 그냥저냥 마실 만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절대 갈구하지는 않는다.


3. 그 사람이 궁금하고 왜인지 모를 조바심이 드는 것: 여기서부터가 진정한 "좋아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과 연애를 하는 상상을 하면 그 사람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상상을 하면 속이 약간 뒤틀린다. 비유하자면 탄산음료를 마시는 기분이라고 할  있을 것 같다. 달달하고 톡 쏘는  꽤나 맛있고 종종 찾아서 마시고 싶을 정도는 되는데 중독될 만큼은 아니다. 당장 내일부터 탄산음료 금지령이 떨어진다고 해도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4. 그 사람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 이건 그냥 사랑이다. 연애하는 상상만 해도 좋아죽을  같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상상을 하면 속이 뒤틀리는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나고 심하면 울고 싶어진다. 술을 마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분명히 쓴맛인데(사랑은 고통이라는 말을 떠올려보라) 자꾸 마시다보면 취해서 쓴맛인 것도 잊어버리고 계속 들이붓는다. 내일부터 술이 금지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집 근처 대형마트로 달려가서 술을 쓸어담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2단계와 3단계 사이 어디쯤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귀면서 4단계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3단계 이상에서 연애를 시작한 "연애 금수저"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상대방을 사랑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만 한다. 상대방의 장점은 크게, 단점은 작게 보려고 하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그에게  매료될  있을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연인들에게는  말이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은 차라리 나은 편에 속한다. 스스로 그런 노력을 할 기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노력하는 척만 한다. 상대방이 연기임을 알아채고 상처를 받거나 연기를 하다가 스스로 지쳐버릴 때까지 '' 계속된다. 결국 연애도 정신적인 노동이다. 그것이 쉬운지 어려운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도 중요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의욕적인 근로자인지 프리라이더인지, 일하는 것을 즐기는지 즐기지 않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노동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아무리 정신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기에 연애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라고 판단될 때만 연애를 한다.  연애가 가져오는 이득이 손해보다 크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한 노동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애는 생각보다 굉장히 자주 우리를 배신한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니 더 본질적으로는 나와 연애하는 상대방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초콜릿이 무슨 맛인지는 박스를 열어봐야지만 알 수 있다고 했듯이 겉으로 보기에는 콜라인데 마셔보니까 까나리액젓일 수가 있는 것이다. 예능 프로에서 까나리액젓을 마시는 벌칙에 걸리면 모두가 처음에는 참고 마시지만 결국은  이상  하겠다며 뱉어낸다. 그렇게  번의 연애가 끝난다.


결국 우리의 지상 과제는 코카콜라 라벨을 붙여둔 까나리액젓을 잘 구별해내고 진짜 코카콜라를 골라내는 것이다.


  이건 콜라다 하고 뽑아내서 마셔봤더니 까나리액젓이고 이게 콜라가 아니면 말이 안된다 하고 뽑아내서 마셔봤더니 까나리액젓인게 연애다. 연애의 결말이 결혼 또는 헤어짐이라고 본다면 사람들은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콜라를 찾아내서, 혹은 까나리액젓을 하도 많이 마시는 바람에 미각이 마비되어서 결혼을 하게 되는  아닐까? 아직 해보지 않았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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