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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25. 2021

바보야, 문제는 색깔이 아니야!

by <미스 슬로운> - 「이성복 아포리즘」과 함께 하는 글

미국 정가의 최고 로비스트 슬로운. 선거 때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총기규제 이슈를 두고 슬로운은 쉽게 이기는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을 따르기로 한다. 어려운 길을 택했다고 해서 승리로 향하는 과정까지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순수한 신념과는 반대로 그녀가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추악하고 비열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깨닫는다. 정의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 이제 그녀가 전해주는 통쾌와 감동을 직접 경험해보자!




나는 오랫동안 정치권에 몸담았다. 내 젊은 시절의 열정과 신념은 거기서 모두 불태웠다. 돌이켜보면 객기와 분노로 포장된 거창한 사명이었다. 순수했지만 또한 야망이었고, 애국심이었지만 또한 조악한 선악의 이분이었다. 정치는 그 본질이 싸움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권력의 언저리에서 얻어먹는 떡고물만으로도 나는 쉬이 오만해졌다. 나와 내 편만 옳다는 그릇된 믿음은 생생히 살아 움직여야 할 삶을 화석으로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정치권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많은 인연들이 그 세계에 있어 떠난 사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고 듣는 것이 많지만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을 그곳과 연관 지어 살고 싶지는 않다. 정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놓아서가 아니라(아니 사실 많이 놓기는 했다), 좀 더 삶에 천착해 내 온몸과 정신으로 체감할 수 있는 일에 남은 열정을 바치고 싶기 때문이다. 멋있고 그럴듯하게 보여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 허무하게 느껴졌던 정치적 수사보다 비록 허구의 세계이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영화 속 대사 한 마디가 이제는 내게 더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한 위안은 그래도 우리가 그 아픔을 '앓아낼'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로비스트 슬로운이 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왜 비주류의 가시밭길을 선택했는지가 사실 궁금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시카 차스테인 주연의 다른 영화 <몰리스 게임>이 오버랩되기도 했는데 그 영화 속 대사를 적용시키면 이해가 쉽겠네, 했다. “탐욕에 지쳤어...”

약 없이는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이겨야 한다는 강박,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승률에 비례해 늘어나는 적, 자기 과신에서 오는 극심한 피로 등 슬로운은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념을 좇는 쪽으로 급선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은 오히려 슬로운을 더욱 코너로 몬다. 갑작스런 회로 변경이 지금은 적이 돼버린 예전 동료들의 승리욕을 더욱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녀를 밟아 추락시키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싸움을 전개시켜 나간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절벽 끝에 서는 선택을 한다. 아, 아직 절망은 금물이다. 그녀가 그렇게 얕은 사람은 아니니. 혼자만의 몰락만을 꾀했다면 어찌 통쾌와 감동이 있으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끝내 신념을 택했던 그녀가 어떤 전략으로 스스로를 구하고 세상을 변화시켰는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 반성할 수 있는 것만이 살아 있다. 시도, 혁명도……
- 부끄러움이 없을 때, 비로소 부러움이 없다.
-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벼랑 끝에 서본 사람 외에는…… 희망은 맹목적인 의지나 신념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깨어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코앞에 닥친 서울과 부산 두 곳의 재보궐선거도 선거지만, 대선이 겨우 1년 남은 시점이라 정치의 소용돌이가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국난 속에 국민의 시름을 달래줄 목소리보다 정쟁의 기운만이 감돌아 국민들은 더 심란하다. 어느 쪽도 부패와 무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그나마 유일한 선택기준이었던 ‘차악’마저 가늠하기 힘들다. Same difference. 더욱 절망적인 건 민주주의를 되살리겠다며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선택을 받은 자들이 국민의 상처 난 가슴에 약이 아닌 소금을 뿌렸다는 것. 미스 슬로운이 얘기한 대로다.
“우리의 정치는 썩어빠졌어요. 양심 있는 정직한 정치인들에게 보상이 있기는커녕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쥐새끼 같은 이들에게 보상을 하죠. 실수하지 마세요. 이런 인간들은 민주주의에 사는 기생충들이니까!”

문제는 내가 타락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타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잃었다는 데 있다. 타락-희망의 상실.



애초에 입과 항문은 한 배엽에 있던 세포들이다. 나는 언제나 입이고 너는 변함없이 항문이라는 오만한 확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입과 항문의 위치가 바뀌는 일은 무참히 일어날 것이다.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심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입이고 누가 항문일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 1년은 꽤 긴 시간이니까. 코로나 극복의 답이 백신이라면 선거의 승리를 위한 백신은 국민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방법은 이성복 시인이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으니 정치인들은 부디 숙지하시라.

- 사랑은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 누구든지 자기 시대의 밑바닥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간과하고서는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다. 그가 신이라 할지라도……
- 희망은 삶에서만 생겨난다. 삶은 희망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 절망의 얼굴과 절망의 목소리로 터져 나오는 희망이다.
- 한 여자를 위해 내가 서둘러 사정(射精)하지 않으려 애쓰듯이, 세상이 만족할 때까지 내 쪽에서 임의로 세상을 신비화시키지 말 것. 현실 자신이 신비로 변할 때까지 현실을 따라가기만 할 것-마치 연 날리는 아이가 남은 실을 끝까지 풀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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