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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17. 2021

라떼는 죄가 없다

by <인턴>


스타트업 패션회사를 이끈지 1년 반 만에 엄청난 성공을 이룬 줄스.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열정 하나는 끝내주는 CEO다. 어느 날 젊은 사람들만 가득한 이 회사에 은퇴한 70대의 벤이 인턴사원으로 취직하게 되고 줄스의 개인비서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는데. 과연 이 둘,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젊지 않다. 늙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늙어가는 중이다. 100세를 넘어 120의 수명을 점치는 시대에서 40대 중반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몸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걸 절실히 체감하기에 ‘젊다’는 표현이 그리 적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휴대전화의 글씨는 저만치 떨어뜨려야 더 잘 보이고, 키는 미세하게 작아지고 있으며, 필수 암 검진 개수는 늘어나고(여기까진 팩트), 여성 호르몬보다 남성 호르몬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한 것은 느낌적인 느낌?

세월 앞에 장사 있는가. 그러나 육체가 점진적으로 쇠약해갈수록 예정된 소멸의 길을 걷는 모든 유한한 생명에 대한 경건함이 다시금 샘솟곤 한다. 그것은 생(生) 자체의 찬탄으로 이어져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감동을 일으키는 동시에 다가올 사(死)를 예견하며 끝내 안타까움에 젖게도 만든다. 슬픈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늙어간다는 것’과 ‘늙어가는 존재’가 후자로만 더 잘 인식된다는 점이다.



남매가 연년생인 데다 올 해 둘째 아이까지 고등학생이 되면서 어느덧 우리 집의 교육비는 생활비의 절반에 육박한다. 코로나 정국까지 맞물리며 사교육비에 생활비까지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한 끼에서 두 끼를 밀가루와 반조리식품으로 대체한 지 어언... 그러나 성장세포분열 폭발중인 두 녀석은 겁이 날 정도로 먹어댄다. 인간이 삼시세끼를 먹는다는 것이 재앙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어쨌건 재작년부터 이래저래 생계의 부담이 확연해지기에 급기야 나는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매일 들락거렸다. 아이들 치다꺼리에 필요한 시간대를 피하자니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새벽시간대의 우유나 신문배달이 가장 적절해 보여서 ‘그래, 운동도 하고 돈도 벌 겸 해보자!’ 하는 마음만 열댓 번을 먹어봤지만, “약 값이 더 들지 않겠어?”라고 할 게 뻔하다는 외부귀인이 스물다섯 번 가동하며 현실안주의 길로 사뿐히 걸어 들어갔다.(도망가기의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며칠간 사이트를 뒤적이다보니 이 나이에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TM(telemarketing)이었다. “와! 돈 진짜 많이 줘! 여태 이걸 왜 몰랐지?”하기가 바쁘게 친구는 실소를 터트리며 “앞으로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
뒤이어 친구는 영업이라고는 들어봤니, 로 시작해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네 성격에 진상 하나 만나면 전화로 싸우는 걸로 성이 안 차 ‘이 인간을 죽여 살려’ 노발대발하다 제 화에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하다로 명쾌하게 마무리를 지어주시니! 그래, 뭐, 세상에 일이 이것밖에 없겠어? 하고 가뿐히 또 패스.



그러다 신이 나를 도우셨는지 우연히 옥석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대형서점의 서가정리 일거리가 그것이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참으로 오랜만에 써 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메일로 보냈다. 며칠 간 초조한 마음으로 답장메일을 기다렸다. 지원마감일이 지나고도 연락이 없자 떨어졌다는 걸 직감하고 ‘인연이 없었나보다’ 하고는 잊기로 했다.
한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곳에서 똑같은 지원공고가 또 나왔다. 왠지 ‘아, 이것은 나를 위한 기회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즉시 재지원을 했다. 지난 번 실패를 거울삼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다시 손봤다.
며칠이 지났다. 이번에도 역시 합격여부를 알리는 답장메일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담당자에게 합격여부를 알려줄 수 있겠는지, 불합격시 그 이유도 알고 싶다는 메일을 다시 보냈다.(아줌마 정신이란 이런 것!)

‘죄송합니다...’

제목이었는지 메일의 첫 문장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저 다섯 글자만 각인되었을 뿐. 아, 그냥 보지 말걸……. 허나 이미 때는 늦었다. 메일을 다 읽고 말았다. 불합격 사실은 차치하고 나를 참으로 슬프고 서럽게 만든 것은 불합격의 이유였다. 40대인 나와 아르바이트의 주 지원연령대인 20대의 원만한 파트너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바로 그 이유였던 것. 그렇다. 요는 업무능력과 사회성, 전문성과 열정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나이! 그러니까 책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꼽는 단순노동조차도 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는 ‘아직 젊은 사람’의 확고한 소신이었다. 그들에게 40하고도 몇 년 더 먹은 내 나이는 80여년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생(生)의 시간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갈 사(死)의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아가 지나간 내 시간조차도 살아서 내 안에 녹아든 것이 아닌 이미 죽어 흔적조차 사라진 무(無)의 세월로 치부되는 듯했다. 한동안 나는 저 속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 속에 풍덩 빠져 지냈다. 우울감과 자괴감이 쌍끌이로 내 혼을 앗아갔다.



영화 <인턴>(The Intern, 2015)에 나오는 줄스(앤 해서웨이)와 벤(로버트 드 니로)의 관계는 역시 환상이었나 싶은 마음이 내가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씁쓸히 다가왔다. ‘열정 가득한 30대의 성공한 여성 CEO’ 줄스와 ‘은퇴한 70대의 든든한 인턴사원’ 벤의 조합은 업무적인 면에서나 인간적 관계의 면에서 상상 이상의 긍정적 상호성과 시너지를 만든다는 걸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배웠었다. 나이든 사람들의 지혜와 책임 있는 처신, 젊은 사람들의 흉내 낼 수 없는 열정과 도전정신은 그 나이를 지나쳐서 잃었든 아직 그 나이가 되지 못해 가져보지 못했든 서로가 아니면 보고 듣지 못할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함부로 ‘라떼 이즈 홀스(Latte is horse)’를 남발하지 않고도 충분히 존중받고, 마음에도 없는 경로우대를 실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상생적 신뢰관계.

물론 40대의 나에게 70대에 견줄만한 지혜와 경륜이 있을 리 만무하고, 20대 기준에서 40대는 부모세대를 바라보듯 대놓고 존대하기엔 어딘가 애매하고도 부족한 나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모 정도는 괜찮지 않아? 나 아주 좋은 이모, 할 수 있는데...



무왕불복(無往不復).

가기만 하고 반복되지 않는 과거는 없다, 즉 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인데, 120세 기준으로는 아직 청년세대인 내 지난 40여년 세월이 온통 ‘지나가기만 한’ 과거처럼 인식되는 현실이 아직은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아니, 어려운 걸 떠나 솔직히 x나 기분 나쁘다.(그래, 나 상처받았다고!)

그래서 어금니를 꽉 물어보기로 했다. 아주 멋~진 중년이 되어 보기로! 물론 안다. 벤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을 지혜와 연륜으로 온전히 체화하여 은은히 배어나오는 체취로 그 향을 발산하려면 분명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과연 나는 내 몸에서 그 향을 제대로 발향하는 때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침내 그 때가 되면 나는 줄스 옆의 벤처럼 당당하고도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아직 젊은 사람들! 나중에 내 껌딱지 하겠다고 서로 싸우지들 마세요~~^^

아, 자존감 좀 높아졌으니 라떼나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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