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서울에 오셨다. 병원 예약을 해두셨고 난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라 오후에 연가를 쓴 다름 서울역에 마중을 나갔다. 원래 계획은 플랫폼에서 손을 흔들며 만날 계획이었지만.. 도착 열차 시간을 살펴보며 전화기를 꺼내고 있는데 눈앞에 아버지가 쑥 나타나셨다.
역 내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자고 하시는 아버지. 그런데 어제 점심때 QR코드 인증 서버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푸드 코트 입장이 어려워지자 그냥 병원 근처로 향했고, 국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랑 순대국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이 집 맛있네. 순대국밥 이제껏 먹었던 것 중에서 여기가 제일 낫다."
아들이 맛있는 거 대접한다고 해도 그냥 속 편한 국밥이 좋다고 하시는 아버지. 그럭저럭 괜찮은 집이었지만 괜히 밥 사는 아들에게 맛있다고 계속 추켜세우신다.
병원 점심시간에 걸려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병원에서 여러 검사 대기하며 옛날이야기도 나누고.. 이래저래 육아에 관한 조언도 주시고..
검사 대기 시간, 결과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도 좋았다. 함께 대화를 나눌 때도, 잠시 대화가 멈추는 순간도 좋았다. 같이 있는 순간이 좋아서 지겹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셔서.. 병원 다음 날짜를 예약하는 곳에서도 아들이 이화여고 선생님이라며 근처에 직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하셨다. 대단한 직업도 아닌데.. 공부를 하고 싶으셨으나 가정 형편으로 못하셨던 부모님에게는 아들이 누군가에게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좋으신가 보다.
"보호자 분도 같이 들어오세요."
순간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었다. 예전에는 지금의 아이들을 손을 잡고 다녔던 것처럼 어디를 갈 때면 아버지에게 물어봤고 여쭤봐야만 했다. 이제는 서울역에서 병원까지 길을 안내하고, 병원의 안내사항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설명을 드리고.. 주의사항을 점검하며 먼저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내가 아버지에게 묻는 것보단 아버지께서 나에게 묻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가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다시 아버지에게 묻는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오래오래.. 정답이 아니더라도, 여러 번 들었던 대답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또 들을 수 있는 아버지가 계셔서 좋았다.
"환자분은 수술 3일 전 코로나 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아버지) 백신 맞았으니 코로나 검사 안 받아도 되지요?"
"(아들) 아뇨. 아버지, 백신은 백신이고, 코로나 검사는 병원에 장기간 머무르시니 받으셔야 해요. 제가 화요일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챙겨드리는 시간도 좋았다.
늘 운전을 주로 하시다가 KTX 기차가 익숙지 않으신 아버지. 밀양에 내려가시는 열차를 찾아 자리까지 안내해드렸다. 그리곤 기념사진 찰칵. 사진 찍는 걸 매우 어색해하시지만 아들의 요청에 흔쾌히 웃으신다.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나눠드리고 안양으로 가기 위한 급행을 타러 왔는데 마침 아버지가 타신 ktx기차가 맞은편에 보인다. 일부러 아버지가 타고 계신 14호차 건너편 플랫폼 위치에 섰다. 그리고는 전화를 했다.
"아버지, 창 밖에 보세요!"
ktx 열차 창문으로 빼꼼히 고개를 보이시는 아버지를 향해 건너편 플랫폼에서 두 손을 크게 흔들며 하트표를 막 날려드렸다. 그 모습이 퇴근길 급행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재미있는 풍경이었을지도. ㅋㅋ 역시 난 아버지 앞에선 막내아들이구나...
조심히 내려가세요~ 아버지 아들로 태어난 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에요.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