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악장. idylle- 수학에서 인공지능으로]
난 지금도 키가 작은 편이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키가 너무 작아서 걱정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동네에서 5살에서 6살이 초등학교를 왜 가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였으니.. 이 때문에 우리 첫째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과연 이 아이가 아빠를 닮아 키가 잘 안 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살아보니 키가 작은 게 큰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운동할 때 빼고. 농구에서 키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변덕규가 그랬듯) 그래도 기왕이면 딸은 아빠와 달리 키가 작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딸이 성장하는 것을 보니 일단 큰 문제없이 키가 잘 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했다. 그런데 소아과 한 편에 이런 성장곡선이라는 그림이 하나 붙어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숫자로 가득 차 있는 표에서 가로와 세로에 손을 그어가며 값을 찾기보다는 이러한 그래프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 한눈에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대략 우리 딸이 지금은 9살이니 만 8세이다. 키가 대략 130cm 정도 되니까 작은 편은 아니다. 이 상태로 쭉 커가면 대략 165cm 정도까진 클 수 있지 않을까? 소고기를 열심히 먹이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면 170cm도 꿈은 아닐지도 모른다.
수학에서 자료를 한꺼번에 나타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표를 통해 나타낼 수도 있으며 그림을 통해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고 자동차의 가격을 표로 나타내면 훨씬 깔끔하다.
표는 대응을 나타낼 때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위의 표를 잘 보면 (0, 2000), (1, 1800),.., (4, 1100)이라는 순서쌍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 순서쌍은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벡터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활용하는데 유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표는 위와 같이 그림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를 표, 그래프, 그림 등으로 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데이터 시각화라고 한다.) 이렇게 그림으로 나타내어보니 표나 숫자들의 나열보다는 훨씬 보기 간편하다.
그래프는 이렇게 시각화한 그림의 형태로 보통 나타낸다. 대응이라는 관점을 쉽게 표현할 수 있고 변화를 직관적으로 살펴보는데도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 코로나 19 일일 발생자의 그래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점을 찍은 후 선으로 연결을 해보면 자료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8월에 갑자기 증가하는 추세도 관찰할 수 있고 연말을 맞이하면서 발생자의 수가 대폭 증가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관찰한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면 나타나는 변화를 알아차릴 수도 있고, 무엇이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변화라는 개념은 x의 값에 따라 함수의 값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살펴보는데서 시작되었다. 수학자는 x의 값에 따라 변화되는 y의 값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리고 x의 값을 아주 조금 바꾸었을 때 y의 값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조금씩 정밀하게 살펴보기 했다. 마치 한 겨울 샤워할 때 따뜻한 쪽으로 수도꼭지를 조금만 돌려놓은 후 물이 샤워할 만큼 따뜻한지 살펴보는 것과 비슷하다. 손잡이를 시계방향으로 1분만큼 회전시켰는데 온도 차이가 10도만큼 나면 변화는 10, 온도 차이가 5도만큼 나면 변화율은 5. 이런 방식으로 자연현상의 변화도 숫자로 표현할 수 있었고, 그 변화의 법칙도 식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수학자 중에서 이러한 변화를 가장 주의 깊게 보았던 사람은 아마 뉴턴이었던 것 같다. 물리학에도 뛰어났던 뉴턴(물리학자들은 뉴턴은 물리학자이며 수학에도 뛰어났다고 표현할 것이다)과 기하학에 뛰어났던 라이프니츠는 거의 동시에 미분이라고 하는 신기한 개념을 수학에 도입했다. 뉴턴은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얼마나 변화하는 정도를 숫자로 표현하는 이 신박한 개념을 통해 자연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규칙적인 자연현상에 숨어있는 법칙을 하나하나 수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시간, 진자가 흔들리는 시간부터 멀리 있는 별의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수학을 통해 설명해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알 수 있으면 우리는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런 능력을 가진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축구 시합 도중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다. 함께 축구 중계를 보고 있을 때 선수들의 체력의 변화나 전술의 변화 등을 살펴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어? 왼쪽 수비수가 좀 지쳐 보이는데. 호날두가 곧 저기를 집중 공략할 거야. 오늘 끝나기 전까지 2골 정도는 넣겠는데?”
마치 예언자라도 된 모양으로 거룩한 어투로 친구가 이 말을 하면 희한하게도 5분 안에 무슨 일이 꼭 일어났다. 축구 시합 결과를 놓고 치킨 내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친구는 대부분 예측을 맞추었고 난 지갑을 열어야 했다. 그런데 만약 주식 투자의 달인이 내 옆에 있어서 주식 변화를 예의 주시하다가
“지금 이 주식을 살 때야! 그리고 저 주식을 팔아! 넌 부자가 될 거야!”
라고 소리쳐준다고 가정해보자. 아니면
“올해 이 대학은 이런 변화로 인해 경쟁률이 낮을 거야. 학생들의 지원 현황의 변화를 봤을 때 이 대학의 이 학과는 무조건 합격이야!”
라는 분석을 해주는 전문가가 옆에 있다면?
놀랍게도 인공지능이 금융이나 의료계 등에서는 이런 역할을 이미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전문가가 되어 변화를 감지하고 예측을 사람에게 돌려준다. 위의 그림에서 왼쪽 태블릿은 인구 이동현황이고 오른쪽 태블릿은 택시의 이동현황을 나타내는 화면이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이 두 데이터를 분석한 후 30분 후 택시 승차 수요를 예측해서 수치화를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휴대전화를 활용하여 인구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운전자에게 어느 지역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알려준다. 그 결과 택시 한 대당 연간 28만 엔의 매출이 상승했다.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뭔가를 시킨다. 마치 사람은 경기장 한쪽에 팔짱을 끼고 있는 축구 감독(개발자)이 되고, 인공지능은 전술에 따라 열심히 뛰고 있는 축구 선수(인공지능 알고리즘)가 된다. 감독은 승리를 위해 최적화된 전술을 설계하고, 이를 선수들에게 잘 설명하고 훈련한 다음, 플레이에 대하여 피드백을 준다. 감독은 선수보다 축구를 더 잘 알지만 아쉽게도 선수보다 축구를 더 잘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수학을 활용해 예측을 위한 설계를 하고, 인공지능에 이러한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입력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그 설계 위에서 마음껏 활동하게 한 후 산출한 결과를 피드백한다. 그 피드백을 다시 사람이 활용하니까 결국 시작도 사람, 끝도 사람이다.
이런 예측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늘 나의 직감을 기반으로 하는 예측은 현실과 맞지 않았는데, 축구 중계를 보면서 '정보'라는 것이 예측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준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비록 내기에서는 졌어도 밤늦게 축구와 치킨, 맥주를 함께 나누었던 20대 시절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어디 있을까? 그 치맥의 추억은 비록 우리의 뱃살을 두툼하게 해 주었지만 예측이라는 것을 가장 훌륭하게 알려준 기분 좋은 수업료로 퉁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