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_<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The Merry Recluse)를 읽는 동안, 내가 그녀와 잘 알던 사이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친구 혹은 동료와 마주한 느낌도 받았다. 책을 읽는다기보다, 카페에서 만나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마치 저자의 인맥 중, 믿음 가는 친구의 하나인 양, 작가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묵묵히 귀 기울여 듣는 장면이 떠오른다.
글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혼자 일하는 삶, 개를 산책시키는 일상, 부모의 죽음,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과거, 거식증 등에 관한 이야기로, 냅이 30세부터 42세까지 <보스턴 피닉스> <살롱>등에 썼던 글을 모은 책이다.
특히 상실과 중독,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만, 불안으로 인한 섭식장애는 자주 등장한다.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 그럼에도 일기나 자기 고백으로 한정 짓기에는 글이 주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과거에 대한 향수 혹은 후회나 합리화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글 쓴 사람의 직설적이면서 솔직한, 그리고 섬세한 자기 분석 덕분인 것 같다. 아울러 스스로 택한 고독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뇌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자신의 내면을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이는 사회적 통념의 오류와 편견을 지적하는 문제의식으로도 확대시켜 주었다. --(노인의 존엄에 관한 글,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오용 등)
때로는 외로움과 고립으로 힘들 때도 많았지만-알코올 중독과 거식증을 경험-, 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냅의 문장은 감성만 자극하거나 비관적인 것도 아니었다. 중독, 상실, 고독 이란 단어가 갖는 무게감으로 짓눌리기보다, 대상을 그 자체로 바라보듯 담담한 어조로 분위기를 끌어내고 있어, 글을 읽는 동안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았다. 또 중압감에 휩싸인 체 끌려가지도 않았다. 그 자신이 말했듯 "햇살처럼 밝은 성격을 지닌 사람을 포기했다."지만, 오히려 이 같은 솔직한 태도가 우울감이나 외로움의 실체를 분석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과 심리상태를 이해하고, 보편적 감정을 표현한 글은 드물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것 같다.
다만, 겪어본 적 없는 일조차 공감하게 만드는 글솜씨를, 앞으로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
명랑한 은둔자. 캐롤라인 냅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꽤나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사회와 거리두기를 택했다 할지라도, 나는 오히려 심리적, 정서적으로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Caroline knapp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1981년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저서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등이 있다.
*경험을 통해서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인생 하수다.
나도 고수는 아니지만, 분명(의도야 좋았겠으나) 하수 짓도 많이 했을 것이다... 이럴 때, 고수를 만나면 도움이 된다.
캐롤라인 냅의 책이 그런 류 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약력을 읽지 않더라도, 지적이고 섬세한 면모는 문장을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수다도 대화도 좋지만, 명문장을 만나는 기쁨!.. 글에 가시가 돋쳐있다 해도, 그건 나를 향한 발언도 아니고~.
보기 싫고, 엉터리 같으면 그만두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내가 듣고 싶고 말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그 대사들이
책에 완벽한 문장으로 제시되어 있다니! 왜 아무도 이런 말 내게 안 해 준 걸까. 내가 흘려버렸나. 나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열심히 했는 데, 이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졌다.
담아둔 말, 놓친 말, 이제 어디 가서 할 수도 없고... 책이 대변해준다. hooray~.
*나를 1cm만큼 성숙, 성장하게 만든 책/영화*
타일러 라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 - 엘 고어도, 그레타 툰베리도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타일러의 책은 좀 더 실생활에서 받아들이기 좋은 책이란 생각을 했다. 환경은 여유 있을 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제 일상에서 일 순위로 올려두고 실천해야 한다. 책은 친환경재생용지로 제작되었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럴 월드(in a better world)> -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며 살았던 그때, 영화를 보며 고개 끄덕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멋진 풍광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