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 주름은 인생의 지혜
여기도 저기도 "할매손 ~"... 대한민국 식당 이름에는 유독 할머니를 강조하는 곳이 많은 것 같다.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은 맛있다는 기본적인 인식 탓일까? 그런데 손맛이 왜 다 천편일률적이야? 라며 의문을 품었던 적도 있다. 어떤 가게는 서로가 원조라며, 상호 분쟁이 붙기도 하던데, 도대체 할머니들의 손맛이 뭐길래, 이렇게 너도나도 할매손oo, ~~ 할머니에 집착할까.
마침 책 제목도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다.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일도 연애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인생의 바닥을 긁던 한 젊은이가 길을 떠난다. 전 세계의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할머니의 부엌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특별 레시피를 찾는 일이 목적이다. 다만 대상이 할머니 '아무나'가 아니라, 그녀가 정한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 분이어야 한다.
"80세 이상, 요리를 잘하는 분일 것... 장인정신, 홈메이드, 올가닉이라는 단어에 적합할 것. (그 외에 몇 가지 더 나온다.) 이렇게 정한 '할머니 헌팅' (저자가 자신의 할머니 인터뷰 과정을 그렇게 불렀다.)을 위해 전 세계 90개 도시를 다니며, 100여 명의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왔다. 할머니들이 보여준 음식들은 매일 먹는 집밥, 아주 평범한 가정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요리방법이 어렵지는 않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령 "잼을 만들 땐 말이지, 반드시 오른쪽으로만 계속 저어야 해. 왼쪽으로 저으면 묽은 잼이 되거든. 그래서 오른쪽으로 젓는 거야 "
그런데 이게 또 할머니만의 체계인 셈이다. 할머니의 비법이란 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할머니만의 방식이고, 오랫동안 반복하며 얻게 된 노하우니, 그게 할머니의 스타일이다. 흉내는 낼 수 있지만 '그 맛은 아닌', 바로 할머니의 전매특허다.
이렇게 만난 할머니들은 어떤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열정적이었고, 건강한 에너지를 갖고 계셨다.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와 번뇌로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니라, 현재에 만족하고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여전히 활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할머니들과 대화하다 보니 (글쓴이의) 바닥난 마음까지도 밝은 에너지로 가득해진다.
할머니들은 요리법도 공개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체득한 인생의 지혜까지 들려주시니, 몸도 마음도 당연히 치유될 수밖에. 이렇게 허기를 채우고 마음의 위로까지 주는 음식들은, 요즘 말처럼 인스타그래머블한 모양새는 아니지만-실제로 사진 속 할머니들의 음식은 정말 예쁩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도 충분했다 (*추후 저자의 행보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여행과 일러스트, 요리에 대한 관심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할머니표 음식이 주는 힘의 원천을 알고 나니 한 편의 인생 다큐멘터리가 그려진다. 그리고 저자가 찾아간 사람이 뉴욕, 도쿄, 싱가포르 같은 미식 천국의 유명한 요리사도 아니고, 도심 외곽이나 시골에 살고 계신 '동네 할머니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대단한 업적은 없는 할머니들이지만, 한 분 한 분의 말씀을 들으며 터놓고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어 나 또한 푸근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에는 수십 가지 음식이 등장하는데, 정성 어린 할머니 레시피 중 제 입맛을 당겼던 것 하나만 언급하며 마치겠습니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만난 멧타 할머니의 콜라 켄타>-책 24페이지
81세의 할머니는 활동적인 커리어 우먼이었고 퇴직 후에도 민박집을 경영할 만큼 의욕적인 분이었다.
이곳에서 배운 요리는 스리랑카 사람이 매일 먹는 초록색 죽, "콜라켄타"
기억력을 좋게 한다는 건강식으로, 빛깔은 브로콜리의 초록과 닮았다.
다진 마늘과 쌀, 물을 넣어 끓이다, 코코넛 밀크를 넣고 다시 끓인 후, 고투콜라 잎 한 움큼과 물 100 밀리리터를 넣고 믹서기에 갈아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후 체로 걸러 다시 끓인다. (소금 간 약간)
고투콜라 잎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울 테니- 요즘은 아시안 마켓 같은 곳에 비슷한 것들이 많다- 루콜라 등의 채소로 대체하면 된다고 한다.
*나카무라 유(일본)는 책을 펴낸 수익금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건강하고 맛있는 식재료 나눔 "유박스", "40 creations"를 통해 다양한 음식 개발 등을 추진하였고, 현재 태국에서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할머니들의 레시피가 담긴 책도 있다.
<요리는 감이여 :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위 사진도 할매ooo)
가끔 국물에 엄지손가락을 담근 체 갖다 주시곤 하는데, 저는 정말 "엄지손가락 맛까지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_-;
2018.5.3 작성한 글을 다시 고쳤습니다. 최대한 유행하는 단어를 배제하려고 노력했지만 익숙해진 말이 계속 나와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힙한장소, 잇 플레이스, 고투 플레이스, 셰프, 레시피, 소울 푸드... 참, 이들도 모두 식상하다고요? 이제는 flex의 시대니까.
감흥은 책을 읽은 직후만큼은 아니겠지만, 글을 다시 읽으니 행복합니다. 인생의 미로를 헤매다 길을 떠난다고 누구나 실마리를 발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책의 주인공은 실천력이 대단한 멋진 여성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읽은 책 목록 중에서 선택했고, 꼭 알리고 싶은 책이라, 어설프지만 정성을 들여 오늘의 브런치 메뉴로 올립니다.
아, 그런데 또 명언 하나가 떠오르네요. "모든 초고는 쓰레기...(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왜 이런 말을 해서, 글 쓰고자 하는 이들을 부담스럽게 하나요? 그런데 이제 깨달았습니다.
저는, 퇴고를 하지 않은 글, 즉 쓰레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 파일 속 오래된 쓰레기들을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해 둘 생각입니다. 다행히 냄새도 나지 않고, 썩지도 않네요. 재활용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고쳐봅니다. 언젠가 이 쓰레기도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 되어 새로운 창작품으로 탄생하길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