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섬>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은 터키석 빛깔의 물빛 덕분에 에머럴드 섬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상업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올리브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에게해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이 섬은, 2015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리스 정부 사이에 체결된 협약에 의해 핫스폿으로 지정되었다.(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의 5개의 섬을 난민들의 거처로 지정) 핫스폿의 공식 명칭은 난민들의 '1차 접수 시설'이다. 난민들의 거처이자 서류상의 모든 절차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망명 신청을 위한 신원 확인, 명부 작성 등을 목적으로, 현재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토에서만 운영 중이다.
레스보스 섬의 난민 수용소는 이미 정원 초과 상태라, 올리브나무 숲에 임시 텐트촌을 마련하여 비공식 수용소를 설치했다. 수용소에 설치된 시설은 극도로 비위생적이고 불결하기 짝이 없다. 화장실 하나를 100명 이상, 샤워 꼭지 하나로 150명 가까운 사람이 함께 사용할 정도다. 식수와 배급되는 식량은 항상 부족하고, 텐트 주변에 버린 오물과 쓰레기로 인해 피부병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불도 들어오지 않고 빗장이 없는 화장실 때문에 여성들은 밤이면 그곳에서 구타나 추행을 당하기 일수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다.
난민 캠프의 실상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난민 소탕 작전이다. '푸시백작전'으로 불리는 난민 저지 작전은, 그리스와 터키의 해양 경비함, 파견 정찰함 등이 난민들을 태운 고무보트나 나룻배, 뗏목 등을 터키 영해 쪽으로 밀어냄으로써, 유럽 영토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하는 일이다. 국경 방어와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각종 신무기와 경찰견으로 무장한 그들의 난민 색출 작전 또한 살육을 방불케 한다.
물론 유엔 난민기구의 긴급 구호 활동은 역사가 길고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앰네스티와 국경 없는 의사회, 각종 인권 단체의 지원과 난민을 위한 섬주민의 협력도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지원금 축소로 인해 유엔 난민기구의 재정적 상황이 더 열악해졌고, 유럽 국가들의 반난민 정책, 불투명한 핫스폿의 운영- 내부 비리, 부패와 각종 불법거래 등-으로 난민들이 겪는 비극은 끊이질 않고 있다.
장 지글러의 책은 이 같은 사태를 지적함과 동시에 난민의 망명권 정립과 핫스폿의 즉각적인 철폐를 주장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는 데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난민처럼 목숨이 위태로워 모든 것을 등지고 도망치듯 떠나는 이들을 생각해보니, 그저 참담하고 암담할 뿐이다. 삶의 터전을 버려야 할 때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그들이 겪는 24시간은 어떤 무게로 다가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권이 보장받는 참다운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지만,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난민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과 감상을 담고자 함은 더욱 아니다. 단 하나, 난민에 대한 오해는 하지 않아야겠다.
문득, 10년 전 일이 생각났다.
당시만 해도 난민을 만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고, 난민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체 살았다. 우연히 난민을 만나게 되었는 데,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한국에도 난민이...?' *****출신이라는 데, 검색해보니, 미승인 국가라고 나왔다.
난민신청이 기각되었고, 출국명령이 떨어졌는 데 고국으로 돌아갈 경우 처형당한다고. 도와줄 방법을 몰라, 법원과 인권위원회를 알려준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실은 두려웠던 것 같다. 처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혹시 정치범인가?'...
책을 읽으면서 기억났다. 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얼굴과 이름은 모르겠지만, 키가 크고 물 바랜 검은색 바지에, 가죽 벨트와 부츠가 특이했던 것도.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은 체... 그동안 나는 내 인생에만 집중한 체 열심히 살았다. 무지와 편견, 선입견은 그대로 간직한 체.
그 날, 두 사람이 인권위원회에 찾아갔는지 확인이라도 했더라면 지금 내 마음이 달라졌을까.
책을 통해 지구 반대편 세상을 보게 되었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이곳에만 머물러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와 다른 일에는 무심한, 그래서 점점 세상일에 무덤덤해지는 그것이야말로, 실은 두려운 일이다.
난민과 관련된 기사를 자세히 보고 싶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을 추천
*장 지글러
1934년 스위스 태생. 현재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