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고 이해 못한 세계문학 다시 읽기
그때는 몰랐고, 지금도 알듯 말듯한 책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며, 단 한 번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팀 버튼 감독)도 마찬가지다. 앨리스와 여왕, 토끼, 험프티 덤프티 모두 기억나지만 그들의 대화를 어떻게 해석할지 몰랐다.
홀든 콜필드도 그랬다. <호밀밭의 파수꾼>. 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이라던데, 나는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화가 난 10대 사춘기 소년의 이유 없는 반항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는 늘 책이 많았다. 세계문학전집부터 잡지, 만화, 어린이 신문까지도. 언니도 나도 잡다하게 책 읽기를 즐겨했다. 다행히 스마트폰 같은 신문물이 없었던 시절이니 가능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지만, 모든 것을 이해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문장만 읽었던 책도 분명 많을 것이다.
시험이 아닌 이상, 다시 정독할 이유를 못 느꼈고, 그렇게 잊혀갔다.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은 데, 문학작품을 다시 정독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2월 <비밀의 화원>을 다시 읽게 되었다. 분명 이 책도 읽었던 기억은 나는 데, 스토리는 안갯속에 갇혀 있다. 책을 다시 읽는 데, 너무 재밌어 술술 넘어간다. 그리고 1/3되는 지점에 다다랐는데, 콜린이 등장하고, 그제야 내용이 떠올랐다. '그랬지, 예전엔 추리소설인 줄 알고 긴장하며 읽었지...'
버릇없는 고집쟁이 메리가 마사와 디콘을 만나 달라졌고, 콜린은 이런 메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메리에게 황무지는 신대륙이었고, 비밀의 화원은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게 된 파라다이스였다.
그리고 올해 1월, <모비 딕>을 다시 선택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줄거리와 요약이 워낙 넘쳐나기 때문에 찾아보면 된다. 그럼에도 완역본을 시작. 이슈미얼이 퀴퀘그와 만나고 배에 타기까지 3일, 에이해브 선장이 등장하기까지는 하루가 더 걸렸다. 흰고래는 언제 출현하나? 중간중간 너무 많은 설명이 나온다. 신화, 성서, 역사... 작가가 도서관만큼의 책을 빌렸다더니, 정말 이런 책이 탄생했구나. 그래도 줄거리를 아니까 기다릴 수 있었다. 1권의 마지막 2-30페이지는 정말 힘들었다. 마치 포경학이나 배를 타기 위한 기본적인 상식을 다루는 전문서적처럼... 지루하게 책장을 넘겼고, 7일 만에 1부를 마쳤다. 힘들게 힘들게 페이지를 넘겼음에도, 중간에 잠시 쉬면 다른 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동시에 여러 책을 읽는 버릇이 있다.)
아직도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작가의 노력과 고충이 느껴진 탓일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읽는 내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던 <모비 딕>. 이야말로 고전, 아니 문학의 힘이라 믿게 되었다. 2권도 곧 시작해야지~.
올해는 놓친 고전,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작품들, 그리고 포기했던 명작들을 하나씩 도전해봐야겠다.
지금이 기회 아닌가.
언제 또 이런 여유(?)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
예전처럼 포토그래픽 메모리는 아니지만, 이해의 폭은 분명 넓어졌다고 믿는다.
그땐 정말 세상을 몰랐고, 감정 또한 단순했으니- 좋다, 싫다, 재밌다, 끝.
이제야 말로 다채로운 감정을 대입시켜볼 기회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명작은 못 쓰겠지만, 읽을 수 있는 것도 행운~.
월클(월드클래스 작품) 보며 뭉클하면 그것도 행복~.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RHK2020.12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새로 출간한 책은, 오일 파스텔 작가의 아름다운 삽화까지 담겨있어,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던 책이다.
*한 때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던 책*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
스트릭랜드가 주식중개인이란 직업을 버리고,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타히티 섬으로 떠났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꿈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달과 6펜스>를 읽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표현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할 때 책이 대신해 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