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발견하는 자의 것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며 떠오른 잡념

by 깔깔마녀

희망은 허상일까?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일상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추상적 개념의 희망은 간혹 구체적인 형태나 누군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체 내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희망) 존재를 의심하는 것 같은데, 봐. 이렇게 살아있다고!" 라며 보란 듯이 메시지를 던져줄 때도 많다. 이번에는 드라마에서 구체적인 희망을 만나게 되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통증을 거의 못 느낀다. 한 마디로, 일주일에 한 번 맞는 진통제라고 하겠다.

주인공인 5명의 의사들은 한 병원의 동료이자 오래된 절친이다. 그리고 서로의 인생상담사이자 때로는 형제, 부모 같은 역할을 척척 해낸다. 가족에게 말 못 할 상황도 친구에게 먼저 말하고, 친구들은 자신의 일인 양 앞장서 도와주고 있다. 여기까지는 '친한 친구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현실에도 그런 사람들 많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은 친구에게만 이런 온정을 베푸는 게 아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따뜻한 사람들이다. 궂은일을 타인에게 미루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또 바쁜데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까지 챙기며, 서로의 기쁨을 기뻐하고 슬픔을 내 몰라라 하지 않는 인간적인 면모를 서슴없이 발휘한다. 게다가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게, 이야말로 '이상형' 아닐까 싶다.

비록 서스펜스나 긴장감은 없지만, 고민 없이 볼 수 있어 몸도 마음도 편해진 것 같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보던 '음모, 배신, 복수, 불륜, 꼼수, 이간질, 갑질, 비난...' 등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그랬을까.)



나도 한때는 이런 이상향을 꿈꾸었다. 아니 존재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조금 삐딱하게 볼지라도, 여전히 세상은 온기 가득하다고, 단지 상황이 좀 불리해서 그런 모습이 가려졌다고 믿고 있다. (->지금은 '믿고 싶다'가 솔직한 표현이겠지만, 사람의 마음과 관점 그리고 생각은 조금씩 변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정말 스트레스 지수 제로, 불안지수 제로, 역경지수 100( 100이 최고라고 할 때), 행복지수 99까지 올라간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모든 아픔과 고통을 잊은 체 몰입의 경지에 도달한다.

아쉽게도 끝난 후, 약효가 떨어지듯, 내 몸도 다시 아프고 고민도 시작된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몸이 다시 아프다.



한편, 어떤 평론가들은 내용이 '피상적이다, 감성만 자극한다.'라고 하는 데, 그들은 직업적으로 드라마를 촘촘하게 파헤쳐야 하니까, 분명 그럴 수 있다. 나는 분석은 못하지만, 잊고 지냈던 아니 의심했던 희망을 다시 품을 수 있으니 만족한다.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분명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 이런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니, 적어도 내 눈에는 성공작이자 수상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쓸데없는 희망고문을 자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희망이 찾아오면 언제든 의자를 내주겠습니다.

비록 희망은 *환영幻影일지라도, 언제나 환영歡迎합니다."





아, 그런데, 벌써 막바지에 달했다. 결말이 궁금하지만 검색하지 말자.

그리고 어떤 결말도 괜찮다. 그들 모두의 선택이 궁금할 뿐이다. 다만 결국 둘이 연결되었다... 보다는 각자의 길을 잘 걷게 되길 바란다. (닥터 안정원, 장겨울)





*책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가 떠올라서 따라 함

*환영 幻影: 눈 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환영歡迎: 오는 사람을 기쁘게 맞이함.




저는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영화는 *필름으로 치자면, 지구 한 바퀴 돌아도 될 만큼 봤다고, 무리수를 둡니다.) 파헤칠 만큼 잘 모릅니다. 그저 즐기는 수준이지요. *드라마 퀸의 경지에는 더욱 못 미칩니다. 인기 있다고들 하는데, 관심조차 안 생기는 이상한 습성이 있지요.- <미스터 선샤인>, <해품달>, <도깨비>, <시크릿 가든>, <별그대>, <스카이캐슬> <부부의 세계> etc 모두 본 적 없으니...

대신 기억에 남는 것들은 <김사부 1> <식샤를 합시다 2> <아무도 모른다> <시그널> 그리고 미드&영드 다수..


*드라마 퀸: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호들갑 떨고 감정을 과장하는 사람들을 말하지만, 드라마를 열심히 보며 하나하나 짚어내는 능력자들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제 마음대로 : )




가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괴로울 때 떠올리는 명문장이 있다. 소위 말하는 아포리즘. 이상하게도 루쉰의 말은 제게 희망을 줍니다.


희망은 원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는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 길이란 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IMG_1511.JPG 올여름에는 맛있는 무화과를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우리 집 무화과, 5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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