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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Jul 24. 2021

살고 싶은 이유 찾기

버티기 10단의 자세

지친다. 힘들다. 

이번 달 내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단어들이었다. 자고 일어나도 변함없이. 


어제는 도저히 버틸 의지도 힘도 나지 않았다.

밤새 실컷 아프면서도 견뎠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다 귀찮아졌다.

그런데 아직은 생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훨씬 큰지라,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아주 단순하고 저차원적일지라도 (욕구의 단계로 따지자면), 이 사소한 일이 나의 하루를 버티게 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초콜릿이다.


결국, N 포털사이트를 이용, 검색하니 비건 레스토랑이 나오고 초콜릿과 캐러멜도 메뉴에 있다.

더위에도 불구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 돌아갔다.  가게는 사진처럼 예쁘고 아담하고 깨끗했다. 그런데 판매직원은  재료에 대한 질문에 대답도 못하고,  멀뚱하게 쳐다만 본다.  찜통더위에 아이스팩도 없이 테이크 아웃이라, 녹기 전에 얼른 하나씩 먹어야 했다.  잔뜩 기대하며 초콜릿을 입속에 넣자마자,  

'아... 맛없다. 정말 맛없다. the럽게 맛없다.'

"맛없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맛이었다.  맛집 기행을 하는 리포터들이라면 온몸으로  과장된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을까?  "아, 입에서 살살 녹아요~." 당연히 입에서 녹는다. 초콜릿이니까.

맛을 잊기 위해, 아니 씻어내고자 곧바로 캐러멜을 선택. 해동이 적당히 된 상태라 먹기 좋았다. 

달리 구사할 표현이 없다. 아니, 하기 싫다.  할 이유가 없다.

다시 중간에 볼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넣었다.

2시간쯤 뒤, 저녁 후식으로 초콜릿을 먹으니 맛이 달랐다. 그럼에도 맛이 없었다. (맛이란 게 없다.)

내 입맛에 문제가 생겼을까? 캐러멜은 버터의 느끼함이 더 강하게 살아났고 단맛과 짠맛이 뒤섞여 일반적인 캐러멜과 큰 차이가 없었다. 

좋은 재료인지, 비건을 위한 특별한 레시피인지 몰라도 (비건 식당도 맛있는 곳 많다.)

그저 내 입에는 갈색의 비싼 단물로만 느껴진다. 레시피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맛없는 초콜릿을 먹자마자, 살고 싶은 의지가 샘솟는다. 

왜?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먹고 죽을 순 없다!

살아서 더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좀 더 맛있는 걸 많이 먹은 후에 죽어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무대책 인생이라도 살아야겠다.




오늘도 무너져 내려가듯 힘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버티는 법을 몰라도 버텨야 하고, 

버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그저 버티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나니

어쩌면 생에 대한 욕구를 일으키는 것은 의외로 작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작은 도움이나 가벼운 말 한마디 같은. 혹은 나처럼 별 것 아닌 대상으로부터.

혹시 내 옆에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찌든 이들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록 오지라퍼가 될지언정,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몸과 마음의 여유를 잃었던 한 주였지만, 삶이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돈은 썼고 맛은 없었지만, 잃은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초콜릿을 먹고 싶었던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된 일로 치부하면 끝이다. 괜한 의미 부여라고 비웃어도 할 말 없다.  그리고 일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벌인 일도 아니니 더욱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말 한마디로 상대의 고민이 해결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사소한 행위가 의외의 효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2021.7.23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은 사람 없다. 살고 싶은 데,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아닐까요?  작가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초콜릿에 대한 심미안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음식을 먹고 재료와 향을 감지하여 주변을 놀라게 한 적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삶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듯. 후각과 미각이 예민한 사람일 뿐~.


오키나와 빈투바 초콜릿 가게 (내부) _카카오 원두 (방문한 날짜는 개업 1주년 된 날)


https://www.hotelchocolat.com/uk/rabothotel.html

좋아하는 초콜릿 브랜드, 여기 호텔에서는 카카오 관련 체험도 있는 데 카리브해 연안이라, 당시엔 여행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용은 물론. 못 가니까 이렇게 생각이 바뀐다. "카리브해라... 해적이 출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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