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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Jul 30. 2021

뮤직=매직

살아갈 이유를 몰라도,  살아보기

버스를 기다리는데 라디오에서 우아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라벨의 "볼레로"다.  오래전에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서 자주 들어 조금 식상해진 곡의 하나.

그런데 곡을 듣는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타들어가는 듯한 더위조차 잊게 되었다. 어떤 소음도 잡음도 잡념도 사라진 채, 음악과 하나가 되어간다. 마침 타야 할 버스가 도착, 운 좋게 손님도 거의 없었다. 카네기 홀이 부럽지 않았다. 지금, 여기는 나만의 음악 감상실.  15분 가까이 되는 긴 곡인데, 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쉽다. 하마터면 계속 버스를 타고 단거리 여행길에 오를 뻔했다.  긴 곡을 중도에 포기하기 싫어 조금 더 서성이다 (건물에) 들어갔다.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얘기를 몸과 마음으로 확인한 날이다. 지난주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몸져누웠던 것과 달리, 그 마음을 선율에 흘려보낸 듯 홀가분해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재밌는 책을 읽고, 그림을 봐도 생각이 자꾸 채워지기만 했는데, 오늘은 구석구석 남아있던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낸 기분이다.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ABBA의 노래 제목을 떠올린다. "Thank you for the music~~"




나는 일찌감치 예술가의 길을 포기했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함께 길을 걷던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17세의 나이에 미국에 간다는 친구의 이야기는 그저 덤덤하게만 들렸고, 부럽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 잘 가. 안녕. 간단하게 인사를 했던 게 전부다.


예술인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기에, '예술로 밥 먹을 수 없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예술이 밥을 먹여주는지 아닌 지는 몰라도, 예술은 내 "마음의 양식"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답도 아니지만,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기게 만들거나, 생각의 여유를 주기도 한다. 한 번은 너무 억지를 부리는 팀장에게 한 마디 하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는 데, 어디선가 고요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사랑과 영혼>의 배경음악이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들렸다. 결국 마음을 바꾼 기억이 난다.  


커다란 감동,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환희의 순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좋다. 잠깐이라도 기분 전환이 되면 된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주빈 메타의 지휘가 아니라도 훌륭한 연주는 많다.

음악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듣는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잔잔하게 다가오는 음악 한 소절에 마음의 번뇌가 사라진 날, 내게는 신기한 경험이었기에 예전의 일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내일 나의 마음 상태는 알 수가 없다. 일기예보처럼 정확하게 예측할 수도 없고, 때때로 변화무쌍하기까지 하다.

그러면 어떤가. 나는 하루를 무사히 버텨냈고, 내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바로 그 힘이 되어준, 뮤직은... 매직!



보기엔 시원한 파랑, 실제로는 한낮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다.

**감동과 재미 모두 가져다준 음악 영화**

이작 펄만의  <이자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두 번 봐도 감동적이었던 메릴 스트립 주연의  < 뮤직 오브 하트> (이작 펄만이 단역으로 나온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특별한 수업>

<위플래쉬>는 감동보다 재미


**평온함과 휴식을 준 그림+책**

 <풍덩!> 우지현 그림 에세이

극사실주의 화가 세르게이 피스쿠노프의 그림 중 수영하는 사람의 표정이야말로 모든 고민에서 벗어난 것 같다. 


***7월 27일 한낮에 라디오를 들었고, 마침 볼레로가 흘러나왔다. 저녁에는 같은 채널에서 타이스(Thais)의 명상곡을 바순으로 연주하는 걸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담백하게 다가왔다. 

사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대상은 매우 많다. 잊고 지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콜드플레이>가 부른 fix you, 만약 LP로 들었다면 판이 늘어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가끔 첫 소절만으로도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하는 음악이 있다. 최근에는 Leave the door open가 그랬다.  전문적 지식을 열거하거나 곡에 대한 해석은 못하겠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고,  나아가 함께 나눌 대상만 있어도 좋다. 지금은 일기로 표현하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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