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나보니, 부모님이 계셨고, 대한민국 국적자인 내가, 사는 곳도 대한민국이니, 더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전 그 일로 인해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국제교류업무를 맡고 얼마 되지 않아, 내게 주어진 일은, 해외 입양아의 부모 찾기였다.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남성, 파비앙. 부모를 찾아 고향에 왔지만, 끝내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사는 곳으로 돌아갔기에, 그 일은 여전히 내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나를 낳아준 분이 누구인지를 너무 잘 아는 내게 이런 일은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라, 그 마음을 100퍼센트 이해할 순 없었다. 미안함과 아쉬움을 그의 심경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최근에 이 영화를 만난 뒤, 다시 그 얼굴이 떠올랐고, 고향, 부모, 가족, 혈육 같은 연결고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우연히 발견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오랜 팬인 나는, 가끔 그의 공연을 검색하는 데, 이번에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용재 오닐... 연관 검색어가 나오고, 거기에 "하와이 연가"가 보인다.
예고편을 보게 되었는데, 느낌이 온다. 놓치면 안 되겠구나. 하지만 이미 영화는 2024년 10월에 상영했기에, 더는 볼 수 없었다. 다시 출판사와 감독님께 이메일을 보냈고, 수소문 끝에 압구정의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계획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상영관을 혼자 독점하는 행운(?)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글을 적게 되었다.
하와이 이민 역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책을 먼저 읽었다. 파독 간호사, 광부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간간이 다루었는 데, 하와이에도 그런 이민 역사가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하와이 이민 1세대의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02년 12월 인천 제물포항에 121명의 조선인들이 모여 일본 나가사키 항을 거쳐, 22일 만에 멀고 먼 낯선 땅, 하와이의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대한제국의 첫 공식 이민단인 그들의 행보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사탕수수 농장 계약이 만료된 후, 각자의 새로운 인생여정이 펼쳐졌지만, 역시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도 번역기도 없던 그 시대에 의사소통은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졌을까를 상상하니, 벌써 고립된 기분이 든다. 하와이 원주민 중 대한민국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얼마나 있었을까. 21세기의 일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불편했을 것이다. 다행히 1세대가 갈고닦은 길은 후손들에게는 마중물이 되었고, 아들의 아들은 하와이, 나아가서는 미주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 대법원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일화도 알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일제강점기에 부모를 잃은 어린 옥순이, 남의 집에서 일하다, 하와이 이민을 결정하게 되는 대목에서- 영화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처리-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사진 신부가 된 옥순은- 과거에는 남편감과 신붓감을 서로의 사진만 보고 결정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 새로운 기회를 선택했다지만, 사실상 선택의 여지라곤 없었다. 인생을 새로 시작할 유일한 기회가 고국을 등진 채 저 먼 타지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슬픔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하와이 연가>가 특별했던 점은, 하와이 이민사에 대한 충분한 역사적 고증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삶을 추억하고 소환하는 방식이 남달랐던 데 있다고 본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훌륭한 뮤지션인 용재 오닐, 예수정 배우를 비롯 수많은 이들이 기꺼이 영화와 책을 위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냈고, 덕분에 슬픔과 아픔, 고통과 비애의 이민 역사는 치유와 용기, 희망으로 승화되어 깊은 울림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 글을 작성하기까지 무척 망설였다. 감히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아무리 내 글이 끼치는 영향력이 제로일지라도, 나의 무지함이 작품을 왜곡시키거나 실례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계속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다행히 그런 고민을 잠재운 건, 감독님과의 GV 이후였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어떤 일이 성사되기까지에는 늘 그렇듯-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뒤따랐음을 알게 되니, 부족한 감상이라도 공개하고 싶었다.
러닝 타임 60분 정도의 짧은 독립영화지만, 그 울림은 60년, 600년도 더 이어지길 바란다.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니, 일생에 꼭 한 번은 이 영화를 만났으면 좋겠다.
조만간, 엄마와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할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바쁘고 설렌다.
감독님 바람대로, 이야기가 하와이 연가에서 끝나지 않고, 오사카, 베를린 연가로 주욱 이어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