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연결이다

덕후9단과 덕질 달인의 만남

by 깔깔마녀


2025년 초여름 무렵, 집 근처 도서관에서 열리는 편지 쓰기 강좌를 듣게 되었다.

편지 쓰는 일은 어릴 적 취미 중 하나다. 편지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는, 손수 만든 카드를 친구나 선생님께 보내곤 했다. 산타나 루돌프, 크리스마스트리는 너무 흔한 디자인이라, 좀 더 특별한 카드를 만들고 싶어, 자주 찾는 동네의 단골 서점 두 곳을 모두 뒤졌고, 거금을 들여 일러스트 백과를 샀다. 본인이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기에, 완성한 작품을 보며 스스로 감탄했는데, 누구에게 보낼지, 가장 친한 친구부터 우선순위를 정했고, 전할 때는 팬레터를 보내는 것처럼 설렜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닐 때도 미술관과 박물관만큼은 빠짐없이 들렸으며, 전시는 대충 둘러보더라도 엽서와 마그넷만큼은 반드시 구매하게 되었다. 지인이나 동료를 위한 선물을 챙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엽서를 보내기로 했는데, 방문한 도시의 소인이 찍힌 엽서 중에는 나를 위한 것도 포함했다. 집에 돌아와 소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여행만큼 설렜고, 받는 순간에는 즐거운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런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간직하며 지냈다. 말할 기회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상대의 관심사와 처한 환경이 다르니, 대화의 공통 주제로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본인만 신나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특별한 자리를 제외하고 입을 닫은 채 살아왔다. 바로,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편지 쓰기 수업 시간 옆자리의 어떤 아주머니가 문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순간,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직감했다. 일본 문구 전시회 방문 , 정확한 전시명은 <도쿄_ 문구여자전>, 을 위해 준비 중이라는 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주 대스타를 만났을 때처럼 두근거렸다. 내가 덕질 9단이라면, 이분은 달인이다.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싶다.


물론, 취미가 같다는 이유로, 마음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만남은 말을 섞을수록 어색했고, 그 틈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대체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십중팔구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서슴없이 해대었다. “몇 살이에요? 뭐 해요? 결혼했어요? 어디에 살아요? ” 막 들어온다. ‘헉, 개인정보와 신상인데….’ 어떤 이는 “와, 좋겠다. 돈은 어디에서 났어요?” 최대한 완곡하게 옮긴 것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당황스럽다. 더는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았고, 결국, 두 발짝 물러선 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게 된다. 뭘까, 상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질문하는 사람들이 나쁘거나 그들 모두가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질문을 해 본 적은 없었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나 보다.


다시 돌아와, 경찰의 취조 같은 질문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그분과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문득,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예전과 달리 연락처를 먼저 물었고, 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덕질이란 개념이 부재한 그 옛날부터 가꾸어 온 취미와 취향을 서슴없이 꺼내게 되었고, 그간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타인과 어울리기보다는, 취향과 취미를 가꾸는 데 주력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좀 다르다. 취향을 “함께” 나눈다는 건, 든든한 정신적, 정서적 후원자를 만난 기분이랄까. 팬덤이란 말도, 오빠언니 부대가 형성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한때는 그런 어른들이 신기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달리 보인다.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행동력은 정말 놀랍다. 아, 저런 게 바로 연결, 연대. 그런 거였지. 서로 통했다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려니 한계를 느낀다. 문득, 영화의 명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E.T.에서, 엘리엇과 E.T.가 서로의 손가락 끝을 맞대며 교감하고 대화하던 그 장면, 바로 그때의 환희와 벅차오르는 감동과 같다면, 너무 과장일까?


인생의 소소한 재미를 잘 아는 덕력 소유자들은 분명 어디에나 존재한다. 비록 혼자 즐기더라도, 가끔 어디선가 마주치면, 그 에너지는 남다를 것이다.

자, 이제 모두 자신의 덕질을 커밍아웃해도 좋지 않을까요?


IMG_5273.JPG 나의 또다른 덕질_ 전국 김밥맛지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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