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호수다

책 ㅡ모든 열정이 다하고

by 깔깔마녀

사람은 숨 쉬는 동안, 끊임없이 크든 작든 변화를 마주하며 산다. 늘 가능성은 열려있다. 고로 누군가의 삶을 쉽게 판단하고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90이 넘은 나이에 로또가 당첨된 노인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지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볼 때도 그랬다.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이제 더는 새로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가도 뜻밖의 즐거운 일을 만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IMG_8726[1].JPG 책표지 그림을 보고 완성한 모작

얼마 전 읽은 책 all passion passed (모든 열정이 다하고, 사라진 모든 열정_ 저자: 비타 색빌웨스트)을 통해 인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든이 넘은 슬레인 백작부인은 남편과 사별 후 자신의 독립을 선언한다. 자식들은 홀어머니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기만의 방을 마련해 둔 상태였다. 오직 하녀 1명과 함께 시골의 작은 집으로 내려와 불필요한 곁가지, 즉 소모적인 것들과 결별한 채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정원 가꾸기 같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을 선택한다.

자식들 앞에서 당당하게 독립을 선언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고,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 멋지단 생각을 하며, 그녀의 선택에 손뼉 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몸도 마음도 약해져 의지의 대상을 찾기 마련인데,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며 남은 시간을 예술 활동에 전념하고자 한다.


문득, 노년의 삶을 떠올려본다. 아직 상상은 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 또한 한 해 한 해 내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실감하며, 노후에 레이디 슬레인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아직 자신이 없다. 노인들은 우선 주변에 큰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환경도 변화된 몸에 맞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들었다. 신체적으로 약해지니 어쩔 수 없다. 고로 시골로 간다는 것은 낭만적인 삶보다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불러들이는 것과도 같다. 무엇보다 나를 챙겨줄 동반자와 자녀는 보험과도 같다는 말에 덜컥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래전 19세기의 여성이 이런 진보적인 발상- 당시 여성의 입지가 지금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낫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을 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건, 소설이라 가능할까... 아니다.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태도가 남다른 이들은 분명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그녀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이해가 되고, 삶을 주도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삶이 옳다고 말할 순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때의 최선이 차후 최악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만족의 정도가 높다면 그 삶은 괜찮다고 본다. 즉, 누군가의 선택을 두고 판단하는 것도 본인 스스로의 몫이다. 슬레인 백작부인도, 젊은 날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결혼이라는 제도와 약속을 지키며 양육과 가사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다. 그 시대의 보통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늘 가슴속에는 자신의 포부를 품고 살았기에, 결국 이렇게 원하는 삶을 선택하였고 결과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그 일 하나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 또한 가진 것을 내려놓고 진짜 원하는 것을 택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서 가능했을 것이다. 타인의 눈에는, 자녀들 가까이서 익숙하고 편한 삶을 사는 게 안전해 보일 수 있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달랐다. 이야말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지만 정작 본인은 가장 자신답게 살아가는 몇 년이 아니었나 싶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또 한 명의 롤모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레이디 슬레인의 인생을 두고 한 마디로 운운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말처럼 인생은 호수와도 같아 한 손에 쥘 수도 없고 깊이도 알 수 없다. 고로 한 사람의 인생을 몇 번의 질문을 통해 행불행을 단정 짓는 행위는 없어야 할 것이다. 호수바닥에 무엇이 가라앉아 있는지,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 사람의 직업, 그 사람의 환경만 보고 데이터를 뽑고 자신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는 이들의 발언은, 그냥 모른 척하면 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반드시 답은 아니다. 이해보다 거리를 두고 시선을 두지 않는 게 옳을 때도 있다. 괜히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감정 소진하기보다 , 차라리 사람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선을 긋는 일이, 나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편 내가 가진 인생의 깊이를 그들이 모른다고 한들 동요할 이유도 없다. 삶의 깊이를 말로 설명하면서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다. 깊이 있는 삶에서 우러나는 태도는 누구나 인지할 수 있기에. 그리고 더 살아봐야 하니까. 끝까지, 완주할 때까지 변화를 맞이하는 게 우리의 생이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덕질은, 연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