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아니, 해피엔딩!

사소한 일에 무던해지는 중입니다

by 깔깔마녀

저녁 7시 30분, 신촌에서 열리는 음악회.

6시에 출발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예매는 미리 하지 못했다. 공연 소식을 이틀 전에 알았고, 당일 잔여 좌석을 확인했으니 매진될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놓친 게 있다. 퇴근 시간! 순간의 무모함이란, 이런 거겠지.

그날도, 몸은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마음은 이미 신촌에 도착한 상태다.
지하철은 약속 시간을 지켜준다는 믿음만으로 출발했다. 하필 탑승하려던 급행을 놓쳐 다음 열차를 타게 되었고, 그때 이미 지각은 정해진 미래나 다름없었다.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타듯, 사소한 실수가 하루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을 직감했다. 포기는 이르다며, 지하철 안에서 끝까지 시간 계산을 한다. 7시 5분 열차로 갈아타면 5분 만에 도착,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5분… 그래, 아직 희망은 있어.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경의중앙선 개찰구를 통과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 더는 뛸 이유가 없어졌다. 기차는 떠났구나. 결국 7시 22분 출발 열차를 탑승하며 결론 내렸다. 지각사태. 예측을 벗어나 공연장에 극적으로 도착한 내 모습을 그려보려 했지만, 상상 속에서도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촌역에 도착한 시각은 공연이 시작되는 7시 30분.

급하게 앱을 열고 택시를 호출했다. 예상시간 7분? 분명 부도수표인 걸 알지만, 희망을 가져본다.

요즘 왜 이럴까. 취소는 잦아도 지각은 없던 내가,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거나 늦거나.


택시가 도착했고 문을 열자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배철수? 초조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야, 넌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도 늦었잖아. 그런데 라디오가 들어와?’
‘뭐 어때, 이왕 늦은 거, 조바심 낸다고 해결돼?’

‘그러게… 누굴 탓하겠어? 그렇게 급하면 아침에 출발하지 그랬어?’

자조와 자책이 섞인 마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다. 배철수 아저씨의 음성을 들으니 걱정은 잠시 접게 된다. 그냥 되는 대로 운에 맡겨.

공연장 근처에 도착하니 8시. 하필 입구가 아닌 어두운 곳에 내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입구를 찾았고, 도착했을 땐 이미 비창 3악장이 시작된 상태였다. 비창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가장 듣고 싶던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하지만 음악회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 더 바보 같은 짓이다. 아직 2부 순서가 남았다. 두 곡이라도 들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방하듯 티켓을 구매했다. 자리에 앉아 스크린으로 연주자를 바라보는 데, 그때서야 아쉬움이 큰 파도가 되어 몰려든다


인터미션에 입장하자, 무대 한가운데 놓인 슈타인웨이 피아노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슈타인웨이다! 그래 그래, 잘 왔어. 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는데, 어느 관객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 자리는 잘 보여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연주자의 손이 잘 보인데요.”
“그래요? 제 자리는 손은 안 보이는데, 얼굴 표정이 다 보이네요.”
“그럼, 연주자의 감정도 읽을 수 있겠네요?”

짧은 대화였지만, 누군가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취향이 같으면 금세 마음을 열게 되는 모양이다.

2부가 시작되고, 우뚝 솟은 앞 좌석 관객은 내 시야를 가렸고 연주자의 손은 절반만 보였지만, 귀만 열어도 충분했다. 베토벤 열정을 끝으로, 커튼콜을 세 번이나 받은 연주자가 앙코르로 들려준 시벨리우스 즉흥곡을 선사할 때, 오늘의 해프닝도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공연 후, 이야기를 나눴던 분과 입구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인생 선배였지만 음악적 취향이 비슷해,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연락처를 주고받진 않았지만,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콘서트 직후 공연 소감을 나누긴 처음인데 너무 좋았어요. 금호에서 또 뵐게요.”
그게 전부였다. short and sweet. 여기에 공감과 소통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남은 시간은 한 시간. 평소라면 한참 자고 있을 때다. 그런데 오늘 하루를 이렇게 꽉 차게 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출발 전보다 더 생기가 넘친다. 마감을 끝낸 뒤의 여유랄까, 힘든 프로젝트를 완성한 뒤의 안도감일까. 명치에 들러붙어 있던 정체 모를 답답함도 사라졌다.

2025년은, 인생의 모든 감정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U자 곡선의 최저점.

그럼에도 오늘은, 365일이라는 우주 속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훅 내뱉는다. 휴...


예전에는 무모한 선택을 하면 끝없이 곱씹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의 파문이 빨리 잦아든다. 돌이켜보면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하고 싶은 일은 늦게라도 내 앞에 찾아온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반복되며, 나는 그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무모하고 거침없던 해프닝도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은, 내일을 살아낼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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