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행위 속에 살았던 날
그 오래전엔 과거시험장에 당도하기 위해 한양 천리길을 걸었다.
*누군가는 아픈 친구를 보기 위해 뮌헨에서 파리까지 3주 동안 발걸음을 옮겼고, 동화 속 이야기지만 엄마를 찾아 삼만리를 떠났다.
지난 주말, 약 300리(약 130km)를 이동했다. 두 다리를 움직였지만, 기차와 버스를 여러 차례 번갈아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 불편해진 내 몸상태로 보면, 충분히 긴 여정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를 움직이게 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아마 마음속으로 그린 이미지와 경험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 장면, 여행지의 풍광, 한 장의 사진 속 빛과 그림자, 거장의 음악 속 선율... 그리고 나의 살아 숨 쉬는 감각이 더해져 그 안에서 오랫동안 꿈꾸며 살았다.
그 꿈을 나누기엔 한계가 있어, 일기를 쓰고 글로 공개하며 가끔 소통했고, 때로는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가기도 했다. 긴 시간, 내가 쌓아온 경험은 결국 이러한 행위의 연속이었고,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가끔 뜻밖의 장소에서 오래전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흔히 기시감이라 부르는 현상이 스며든다. 이번 여행길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정말 그 시간을 다시 만났을까.
어떤 경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옮긴 발걸음 자체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길 위에서 나는 상상을 하고, 백일몽을 꾸었다. 몽상, 환상, 허상이라도, 이 세상의 무게를 잠시 잊고 나만의 행복을 꿈꾸는 시간. 현실은 다르지만 머릿속에선 이미 앞서간 미래의 모습. 이런 꿈마저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일부러 내게 도움이 되는 일탈을 허용하며 살았지만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혼자 행동에 옮기는 걸 철칙으로 삼고.
도착한 곳은 시골이었다.
밤 7시가 되자 마을은 깜깜해졌다. 편의점 몇 곳의 불빛이 나의 가로등이 되었고, 스마트폰의 작은 불빛이 유일한 등대였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스마트폰이라는 보호자의 인도하에 부지런히 걸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문을 열자, 상상했던 이미지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 속 장면은 아직 내 마음속 시간과 만나긴 일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의 하늘색은 포착하지 못했으나, 직사각형의 통창너머 펼쳐지는 논밭은 "액자 정원"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바로 정면에 보이는 창문하나, 목조로 된 천장, 조명만으로도 오~래전 잠시 살았던 유럽 어느 소도시의 살롱 음악회를 재현할 수 있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눈과 머릿속에서 과거의 시간을 그려보았고 추억이 어렴풋하게 재생되었다.
하루를 꼬박 이동에 투자했지만 버스 시간에 맞춰야 해 중간에 일찍 자리를 뜨게 되었다. 한 시간에 한 대뿐인 버스를 놓치면 집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고 걱정과 달리 정시에 출발한 버스에 몸을 맡겼다. 나를 포함한 승객 두 사람과 기사 아저씨가 전부였다. 24시간 빛이 사라지지 않는 대도시와 달리, 고요와 어둠이 나를 감쌌다.
버스가 출발하자 시골길은 아우토반이 되었고, 멈추지 않고 달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도심도 깜깜하긴 마찬가지였다. 로드 무비도 이런 로드 무비는 없구나... 제발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게만 해 달라고 주문하며 걸었다.
1박 2일의 마지막 날, 일찍 일어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숙소 주변을 걸었다. 고도제한 지역이라 하늘을 가리는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반듯한 도로 모양새 등은 나를 품어주었던 교토와 일부분 닮아 보였다. 하천 중심으로 나란히 형성된 상가의 모습도 비슷했다. 이번 여행의 두 번째 이유는 교토의 가모강을 떠올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규모와 길이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을 찾으려 든다. 교토에는 마치야가, 여기는 한옥을 개조한 상점들과 깨끗하고 조용한 거리,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의 발견...
물론 이런 모습은 전국, 전 세계 어딜 가도 존재한다. 찾아보면. 그리고 굳이 찾으려 들지 않아도 어디든 발견할 수 있고 기술력을 빌리면 재창조도 가능하다.
나처럼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에겐 밥집을 찾기도 어렵고 문도 일찍 닫는 이곳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있겠다. 더 깊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그럼 도대체 왜 여기에, 굳이? 직선코스를 두고, 꼬불꼬불 돌고 돌아오게 되었을까. 사진에 홀렸을까. 이유는 나만 안다.
아마, 그건 "나"라서 그런 것 아닐까.
우리가 각자 그 사람이라서 선택하는 행동처럼, 이해되지 않는 선택도 스스로는 알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 중 하나라고 해두자.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그곳은(그것도 좋다) 이제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가끔 엉뚱한 면이 돌발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않아야겠다. 내가 모를 뿐, 그 또한 이유 있는 행동 아닐까. 자기 합리화적 발언 같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용범위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은 다행이지만, 다시 나의 치료시간은 연장되고 말았으니... 앗, 여기서 멈춤 버튼을 눌러야지.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도, 더더욱 평가는 금물이다. 지금은 또 이렇게 차분히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책 <얼음 속을 걷다>에는, 친구인 로테를 만나기 위해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해할 수 없고 절대 따라 할 일이 아님에도 끌리는 것은 많죠?
*영화 <척의 일생>도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길을 나서고, 마음의 소리에 끌려 떠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위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