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넌 <음식의 위로>를 읽고
"믿음이 없을 때조차 음식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놀라움을 안겨주며, 우리를 달라지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열린 마음으로 나눠 먹으라. 그러면 똑같은 선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음식의 위로
에밀리 넌
마음산책
위로, 치유, 영혼(소울), 그리움...'음식'과 어울리는 조합이다. 맛있다, 맛없다는 표현과 달리, 이렇게 짝을 지어보니 음식이란 단어가 제법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한국사람들이 종종 "밥심"이라는 말을 할 때,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반드시 쌀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넓게 보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겨 먹는 것과 통하는 것 같다. 특히 힘들 때일수록 잘 먹으라는 해석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만든 음식을 나누는 행위,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소박한 밥상이 주는 '놀라운 힘'을 경험 한 적 있다. 에밀리 넌의 책 <음식의 위로>도 그랬다.
저자는 유명한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뉴요커> 편집자로 일했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친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혼, 알코올 중독의 재발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는 영혼이 털린 마음을 페이스북에 쏟아내고 만다. 곧바로 이를 후회했지만, 지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용기를 주는 댓글에 감동받은 작가는, 친구의 조언대로 ‘위로 음식’ 투어에 나선다.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긴 요리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인생도 되돌아보는 것, 이야말로 음식을 통한 치유이자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자신을 일으켜 세웠던 것은 다름 아닌 음식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를 나눌 대상이 있음이야말로 일상을 버티는 힘이자, 삶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내 구미를 전혀 당기지는 못했다. 생소한 재료는 아닐지라도, 늘 먹던 익숙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밀리 넌에게는 사연이 담긴 소중한 음식일지라도, 내 추억의 음식은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을 충족시켰던 음식은 따로 있다. 문득 퇴근길 여름 내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렀던 메밀 국숫집이 떠올랐다. 집과 반대방향인데도 불구하고 지하철 한 정거장을 타고 되돌아갔던 그 집. 늘 메뉴는 같다. 냉메밀 하나. 동그랗게 말아 올린 메밀면 두 장과 살얼음 동동 육수(쯔유) 그리고 단무지와 겨자가 전부지만, 이미 젓가락을 든 손과 마음은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다. 메밀면 전체를 육수에 담그지 않고, 국수면의 끝자락을 찾은 다음 두 세줄만 살짝 적신다. 그리고 다 먹을 때 즈음에, 모양새가 흐트러진 메밀을 모조리 담근 후 마지막까지 힘차게 후루룩후루룩하고 빨아 당기듯 마무리. 한꺼번에 메밀 한 덩어리를 흡입하는 건 국수를 음미하는 태도가 아니다. 센스 있는 식당 주인아저씨는 육수를 두 그릇 주신다. 이미 겨자를 풀어 탁해진 육수와 달리 깔끔한 육수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100% 메밀면도 좋지만, 60%의 메밀이 갖는 탄력 덕분에 면발을 당기는 재미도 있다. 두 그릇 모두 해치우고 나니 겨우 10분-1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찾아오고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인데, 벌써 끝나다니... 여름이 오니 또다시 그 맛이 간절하다.
이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위로 음식이 있다. 책을 읽고 각자의 위로 음식을 떠올리고 다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몇 가지는 공감하는 요리도 있었다. 오크라 구이, 강낭콩 요리. 오크라를 구하기는 힘들지만, 그 맛을 알기 때문에 또다시 생각났다. 콩이라면 모두 좋아하고, 특히 초록빛의 완두콩과 붉은색의 강낭콩, 흰콩은 이미 그 맛과 식감이 그려진다. 이야기마다 하나의 레시피가 나와, 긴 이야기의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사진과 그림이 없지만 글만으로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요리책이 아니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만약 위로받은 음식이 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영혼의 허기를 달래준 음식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책*
<Eat , Pray, Love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카모메 레스토랑>
<우동 한 그릇>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밥이 그리워졌다>- 위로와는 관련이 없지만, 한국인의 소울 푸드는 이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