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 파릇파릇, 풀향기 가득한 책

한은형의 <오늘도 초록>을 읽고 (띵 시리즈 3 그리너리 푸드)

by 깔깔마녀

초록 주의자? 친록파? 저자는 '초록'기운에 반응하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나 또한 초록 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계절을 막론하고 초록색 식탁을 보면 생기가 돋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초록에 더욱 민감해지는 초여름 무렵 풀향기 가득한 책 <오늘도 초록>을 읽었다.


채소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저자의 "초록"가득한 에세이는 무척 말이 많다. 수다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선호하는 음식에 대해 단호하고 확신이 있다는 말이다. 재료에 대한 애찬만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음식에서 하는 역할을 상세히 기술하는 덕분에 각각의 특징을 이해하기 쉬웠다. 문장이나 표현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신하다. "샐러드 연주자"라느니 "문학적인 아스파라거스"등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의 조합이라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읽었지만, 대충 흘려보내기는 싫은 문장이 한가득이다. 특허가 있다면, 얼른 등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태도가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라 푸디(foodie 식도락, 미식가)들의 심정을 대변하기에도 충분했다. 잘 아는 맛들이 대거 등장해 기뻤고, 식물에 대한 친근감이 더해졌던 책이다. 그림, 사진 하나 없이 이렇게 침샘을 자극하는 책도 드물 것 같다.


열거한 채소로는 우리 입에 익숙한 호박잎, 상추부터 좀 생소한 포도잎까지 무척 다양하다. 언뜻 보기에는 풀밭 그 자체라 맹숭맹숭할 것 같지만, 또 다른 요리들이 곁들여져 "풀떼기"의 무(無) 맛을 상상한다면 그야말로 오해다. 입맛과 취향은 저자의 주관일 뿐인데도 공감했으니, 나도 진정한 '친록파'임에 틀림없다.


띵 시리즈의 3번 <오늘도 초록>은 기대한 바와 달리 엄청난 수확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부식 가게문을 열었는데, 신선한 오늘의 채소를 여기저기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랄까? 무엇을 고를지 몰라 분주하게 둘러보며 기분 좋은 흥분상태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어쩌면 필레미뇽보다 가니시로 나오는 구운 야채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초록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처럼 '주의자'를 붙여본다면 초록주의자? 아니면 '친록파'정도라고 하면 될까?(본문- 초록의 기운으로 오늘도, 일부 인용) 163p
구좌 당근 주스를 먹다가 깜짝 놀랐다. ~~ 달다고 하기만은 부족하다. 아주 복합적이면서 오묘한 맛이 났다. 제주 흙의 '테루아'가 찐하게 느껴졌달까.~~ 이건 지구의 맛이 아니다. 이계異界의 맛이다. 외계의 맛과는 또 다르다. 검정 흙의 냄새와 세화 해변의 바람과 엄청난 속도 발육하고 있던 초록의 기운이 동시에 몰려오는 (본문- 제주 구좌 당근 편 부분 발췌) 150-151p



#지금부터는 내 취향의 음식 찬양#

책을 다 읽고 난 후, 결국 초록 식탁을 차렸다. 요리는 노동이고 피로 유발제라, 정작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 때는 입맛은 사라지고 만다. (늘 먼저 허기를 채우고 시작한다. 그래서 다 만든 후에는 먹지 않는다.)

운 좋게 집에는 호박잎과 깻잎, 오이, 완두콩을 비롯한 채소와 과일이 제법 많았다. 농가 식당처럼 각종 채소상차림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앞집 옥상텃밭에서 가꾼 유기농 호박잎은 보드랍기 그지없었고, 깻잎은 뻣뻣하고 질겨 중간에 뱉어야 하는 위험부담도 없었다. 소화가 안돼 외면했던 오이는 아삭아삭한 식감도 좋지만, 굵지 않은 오이씨가 더욱 반가웠다. 소금을 넣지 않고 삶은 완두콩은 그냥 씹어도 구수하고 달다. 아... 먹다 보니 벌써 바닥이 보인다.


한 때 아보카도는 하루 하나를 먹지 않으면 허전했을 정도로 즐겼던 과일이다. 잘 익은 아보카도를 자르고 반은 남겨둔 채, 레몬만 살짝 뿌려 그냥 먹기도 하고 깍둑썰기 해서 따끈한 흰쌀밥과 간장, 그리고 김으로 싸 먹는 것도 좋아했다. 더운 여름에는 아보카도와 코코넛워터(베이비 코코넛의 과육을 포함하면 단맛이 더욱 상승된다.), 오이를 약간 넣어 블렌더에 돌리면 간단한 한 끼로도 손색이 없다. 아티초크! 유럽 어느 시골 샌드위치 가계에서 구운 아티초크를 맛 본 후 깜짝 놀랐다.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후 단골가게가 되었다. 한국에서 아티초크를 찾으니 병에 들어간 절임 형태로 판매하는 데, 이런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아티초크와의 인연은 거기서 멈추었다. 허브의 세계에 빠졌던 적도 있다. 민트, 로즈메리, 세이지... 차로 마시면 비위 상할 때도 있지만 음식에 들어가면 화룡점정이다! 특히 바질 페스토! 바게트에 바질 페스토, 올리브 오일 드레싱으로 구운 토마토 라면 더 이상 다른 재료는 불필요하다. (브루스케타)

고수!

처음 쌀국수를 먹었을 때, 고수 향 때문에 먹다 남겼고 계속 투덜거렸다. 다시는 못 먹겠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 쌀국수를 먹은 후 국물 맛과 어우러진 고수 향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는 '고수 듬뿍 주세요!'라고 말한다.


파프리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빨강, 노랑, 주황, 초록을 자랑하는 채소 아닐까? 단호박, 제주 당근의 선명한 주황은 말할 것도 없다. 고상한 남색 옷을 입은 블루베리, 신비한 보랏빛이 감도는 적양파, 적양배추, 새빨간 핫 레드의 비트체리의 우아한 검붉은 색... 오늘은 여기까지.


IMG_0130.JPG 체리와 블루베리, 베리는 모두 옳다. 내 몸에는 그렇다는 뜻.
IMG_0251.JPG 당근은 먹다 남긴 게 아니다. 어설프지만 있는 그대로 올려보았다. 요리 후 세팅하려면 너무 기운이 없다. 이미 체력은 바닥났기 때문에 데코레이션까지 할 힘이 없다.
EQGJE1136.JPG 엄마가 열무김치 담글 때 방해하기. 작은 무가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김.
IMG_0250.JPG 화단의 깻잎은 샛 초록이라 상큼해 보였는데, 식탁 위에 올라온 것들은 누렇게 변색된 게 색감은 별로다. 먹기에는 후자가 더 낫다. 너무 짙은 초록은 왠지 물감들인 것 같다.




*초록 주의는 좋지만, 채식주의는 반대다. (안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인데, 여기서 더 줄이고 싶은 마음 따위 없다.)

채식이 좋다고 하지만, 어떤 것도 맹신하지 않는다. 뻣뻣한 생야채만 실컷 먹으면 뱃속에서 가스 폭발한다.

생야채, 샐러드, 녹즙 이런 게 반드시 모두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균형 잡힌 식단이면 된다. 고가의 영양제며 과학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한 기능성 식품들이 아무리 나와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영양과잉이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양심의 가책을 주는 것들과는 가끔 타협하면 된다. 적당히 흰색도 즐기고. 설탕, 소금 팍팍~ : )



*떠오르는 책*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아무리 유명한 하루키의 책이라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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